남태평양

열대밀림

by 노을책갈피


열대밀림 속에서는 무위자연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 말은 허망해서 그야말로 무위하다. 열대밀림은 동양 수묵화 속의 산수가 아니다. 열대밀림은 인문화할 수 없고 애완할 수 없는 객체로서의 자연이다. 그 숲은 인간 쪽으로 끌어당겨지지 않는다. 자연은 그윽하거나 유현하지 않다. 자연은 저 자신의 볼일로 가득 차서 늘 바쁘고 인간에게 냉정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지만 인간은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을 적대적으로 느낀다. '무위'는 자연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손댈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열대의 밀림은 가르쳐주었다. 높은 나무들의 꼭대기까지 잎 넓은 넝쿨이 감아 올라갔고 나무와 넝쿨이 뒤엉켜 비바람에 흔들렸고 덩치 큰 새들이 짖어댔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무위자연이란 자연의 흐름에 내맡기는 삶을 살아가며, 도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열대밀림 속에서는 무위자연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처음에 섣불리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열대 밀림의 사진을 가져와보니 한결 이해가 수월해졌다. 자연이 유현하지 않다는 말은 곧 이치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그윽하며 미묘하다는 뜻인데, 나는 이를 자연은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므로 그 본연의 깊이는 인간이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작가는 '무위'란 자연의 본질이 아니라, 거기에 손

댈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깨달은 순간 어떤 감정이었을까? 인간을 허무하고 보잘것없는 하찮은 존재로 여길수 밖에 없는 열대밀림 속 한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나 또한 큰 우주 속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작은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이 대자연 앞에서는 정말 속수무책인 것일까? 실제로 그 열대밀림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떤 감정이 휘몰아칠지 궁금해졌다.


이 한 문단은 나를 열대밀림 속으로 끌어들이며, 인간 본연의 본성이나 모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강력한 문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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