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행"이란 단어만 들어도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우선 설렘이 제일 크긴 하지만 낯선 여행지, 특히 해외여행은 나에게 두려움과 낯섦,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것이다.
우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해외는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아 한동안 매년 갔었던 제주도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여행지다. 나에게 제주도란 친근함을 상징하는 거울인 것이다. 제주도 3박 4일 여행으로 택했던 코스는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에코랜드, 아쿠아리움, 공룡랜드, 휴애리자연생활공원, 세계자동차박물관 등이 주를 이뤘다. 제주도를 갈 때마다 예전 추억들, 특히 아이들 어렸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나곤 하는 것이다. 그때의 사진을 찾아보며 행복한 추억에 젖어들곤 한다. 그만큼 제주도는 나에게 아주 친근한 여행지인 것이다.
반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날 떠났던 베트남 다낭 여행은 아이들을 비롯해 우리 가족이 정말 기대했던 여행이었다. 베트남 다낭은 나에게 설렘의 거울인 것이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은 일전에 다낭을 6~7번이나 다녀온 터라 가이드가 따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낭 맛집, 가볼 만한 여행지, 숙소 등 모든 계획을 남편이 다 해준 터라 편안하게 즐기며 다녀온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여전히 그때의 추억을 꺼낸다. "우리 다낭 언제 또 갈 수 있어? 음식도 다 맛있었고 수영장 또 가고 싶다."라고 말이다. 나 또한 그날의 행복한 추억을 꺼내보며 다음번 베트남 여행을 기약해보곤 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 여행은 우리 가족에겐 좋은 기억이 아니다. 일본은 나에게 두려움 그 자체이다. 유독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아이들이 아파서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가 없었다. 큰 아이가 4살 때 갔던 후쿠오카에서는 폐렴이 걸려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입원을 해야 했고, 얼마 전 몇 년 만에 호기롭게 계획했던 오사카 여행은 둘째 아이가 기침감기가 너무 심해 계획했던 코스는 아예 들러볼 수도 없었다. 일본과 무슨 악연이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항상 그랬다. 그렇기에 당분간은 일본 여행을 계획할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내 마음의 상태를 간간히 확인해 본다. 어떤 감정이 주로 일고 있는지, 내 감정에 오롯이 집중해 본다. 집을 떠나와서 새로운 여행지에서 느끼는 온전한 편안함인지, 그도 아니라면 어떤 불편감은 없는지, 혹시 어떤 일을 미루고 오진 않았는지 등등이다. 평소에 지극히 계획형인 사람이라 웬만하면 해야 할 일을 미루려고는 하지 않지만, 급작스럽게 처리해야 할 일이 여행지에 가면 꼭 생기기 마련이다. 당황하지 않고 일을 마무리하며, 여행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여행은 나의 다양성을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평소에 편안한 일상일 때는 생길 수 없는 감정과 상황들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온다. 이러한 경험들도 쌓여서 어떤 상황이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더 큰 어른이 되어있겠지. 이처럼 여행이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는 거울인 것이다. 다음 여행지에서는 어떠한 나와 마주할까.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은 나에게 어떤 인사를 건넬까. 다음 여행지가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