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보다 읽다 말하다>를 읽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자

by 노을책갈피

<보다 시리즈>

제목: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자


[2부- 삶과 죽음]

일본 미야기현 유리아게 마을의 주민은 오천육백여 명이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이 발생하고 이어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자 이 중에서 칠백여 명이 사망한다. 지진과 쓰나미 사이에는 칠십 분이 있었다.

(중략) 유리아게 주민들을 왜 칠십 분 동안이나 대피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했을까. 일본 현지의 집단심리 연구자들은 대중이 쉽게 빠지기 쉬운 몇 가지 편향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 두 가지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첫째는 '다수 동조 편향'이다. '거리에 나와보니 대피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집에 가만히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집에 있었다.' 이게 다수 동조 편향이다.

(중략) 둘째는 '정상화 편향'이다. 우리 뇌는 위험한 징조들은 어느 정도는 무시하도록 진화해 왔다.

이 센서가 너무 민감하면 공황장애나 광장공포, 고소공포, 폐소공포 등에 시달리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진다. '어,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네. 추락하는 거 아니야?' 이런 의구심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게 너무 잦아지면 문지방도 못 넘는다. 그래서 정상적인 뇌는 이런 센서의 스위치를 써둔다.

(중략) 다수동조편향과 정상화 편향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이나 할렘, 일본과 멕시코에서 태연히 살아갈 수 있다. 다른 곳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

(중략)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해진다. 로마인들은 이천 년 전에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 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테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김영하, 다다다, 복복서가(주), 2021년, 91~96p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너무 힘든 시기에 고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버텨내다가도 '이렇게 살아서 뭐 해?'라며 죽음의 결말을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당장 내일 행복한 일이 일어날 시점에서 오늘의 힘든 상황을 돌아보는 것은 오늘의 삶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그러나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오늘 하루의 특별함을 찾아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오늘과 같은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모여 힘찬 내일 그리고 가까운 미래가 완성되는 것인데, 그러한 사실을 우리 모두가 너무 간과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하루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내야만 한다.

카르페 디엠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우리말로는 '현재를 잡아라'로 번역되는 라틴어라고 한다. 메멘토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이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라는 두 단어는 서로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된다.

이 두 단어를 머릿속에 새기며 주어진 오늘 하루도 열심히, 충실히, 그리고 특별히 여기며 살아가도록 노력해 보자.

우선 나부터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