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슈퍼에서 파는 플라스틱 통 안의 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병에 든 '그' 꿀, 사실은 그렇게까지 맛이 크게 차이 나지도 않는, 아주 미세한 감각의 차이로만 구별될 뿐인 그런 꿀에 매혹되는 인간일까 하는 생각에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다하는 느낌> 중에서
무용의 아름다움을 읽으며 문득 작년에 독서모임에서 가졌던 류시화 시집의 <시로 납치하다>의 어느 시가 생각나서 책을 꺼내들었다. 바로 펫 슈나이더 시인의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이라는 시.
단지 사물이라는 이유로, 겉으로 보기에 생명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물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지난 날들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아무리 하찮은 사물일지라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일.
우리는 과연 그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이런 사물들이 아니면 우리는 어떻게 안일한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
나의 경우에는 반려견의 꼬슬꼬슬한 발바닥 냄새, 아이들의 땀 냄새, 남편의 향수 냄새, 프리지아 꽃 향기, 꽃이 시들어 봄을 기다리는 비어있는 화병들, 매일 아침 다이어트라는 명목으로 마시고 있는 미숫가루에 살포시 얹은 아카시아 꿀 향기,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 불맛이 가미된 건조된 오징어 냄새 등 어느 것도 내 삶에선 허투루 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남들이 보면 무용의 것들일지라도, 나의 일상을 소중히 감싸며 나 자신을 온연하게 만든다.
작가님은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라고 자신의 삶과 연결지어 미세한 감각들을 일으키는 무용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글을 마무리한다.
주제와 메세지를 강하게 전하는 두 문장이다.
우리 안에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존재함으로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누리면서 오감을 자극해주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보기에 쓸모없는 것들일지라도 되려 우리의 삶을 든든히 지탱해주는 무용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