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좁은 의미의) 우리 동네를 처음 알게 되고 좋아했던 건 이곳에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지대에 올라가 내려다본 동네는 희미한 빛 속에서 저마다 서사를 품고 늙어가는 집들과 골목들이 얽힌 고요한 세계였다. 그건 대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며, 10대 시절부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내게 매우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의 풍경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찾아 거닐었던 아빠의 유년 시절 동네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동네를 금세 친근하게 느꼈다.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중에서
우리는 모두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각자의 서사를 품으며 산다.공동주택이 즐비한 도시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시간'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에도, 2021년에 입주한 새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라 시간의 변화를 눈으로 쉽게 체감할 수 없다.
오래된 것, 낡은 것과는 아주 먼 세계에 있는, 옛것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환경들이다.
그에 반해, 작가가 사는 동네의 경우 단독주택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였고, 그곳에서 내려다본 동네는 늙어가는 집들과 골목들이 그 존재 자체로 '시간'을 말해준다.
이 동네의 풍경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찾아 거닐었던 아빠의 유년 시절 동네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에 친숙하긴 하지만, 그런 시간의 변화를 느끼며 작가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살아생전의 할머니의 따뜻한 모습, 아빠의 호기롭던 젊은 시절을 가득 품고 있는 풍경은 아마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먼 '시간'이라고 느껴지기에 더더욱 다가올 변화들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 어떤 누가 다가올 시간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다가올 미래, 아니 당장 내일의 시간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감히 예측할 수 없다. 시간은 금이라고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 속에서도 우리는 이 귀중한 '시간'의 변화를 인식하며, 더욱이 우리의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거울 속처럼 고요한 우리 동네 풍경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지만 밤이 다가오고 있는 기척을 느낀다. 밤은 성킁성큼 다가온다. 모든 걸 쓸고 가버릴 듯한 커다란 갈퀴를 끌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엔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을까?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이따금씩 두렵다.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중에서
<내가 만약 이 책의 서평을 적는다면?>
우리는 평소에 밤하늘을 얼마나 올려다보는가?
단순히 별을 반짝임, 까만 밤하늘을 아득히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쉬이 짐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