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가 봄

by 녹명

찰방찰방 물이 차있는 논에 알록달록 예쁜 물고기를 봤다는 나의 태몽. 그래서 딸일 줄 알았다고 하셨다. 어렸을 때 좀 더 드라마틱하거나 위인들의 태몽처럼 자랑할 만한 꿈이 아니어서 실망했다. 그런 나를 보며 옆에 친구가 " 야 대통령이랑 악수하는 태몽 꾼 우리 엄마는 그 아들이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아들이라며 부질없다"는 얘기에 조금은 위로받으며 한바탕 웃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이 귀한 집안이라 구박이나 설움보다는 특혜와 귀염을 받았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 길을 걷고 있는데 검은 개 한 마리, 하얀 개 한 마리가 웃으며 나를 쫓아왔다. 진돗개였다. 큰 개였지만 어쩐 일인지 무섭지 않고 기분이 꽤 좋았다. 한 참을 두 마리가 쫓아오더니, 돌아보니 검은 진돗개 한 마리만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내가 걸음을 멈추니 내 발 앞에 앉아 혀를 내밀고 웃고 있는데 그 얼굴이 어찌나 순하고 귀엽던지 덩달아 내 입꼬리도 올라갔고 마음은 퐁실해졌다. 꿈에서도 하얀 개가 어디 갔을까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깼는데 배가 아프고 하혈을 했다. 다음날 병원에서 아기집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국 한 아이는 별이 되었다.

처음부터 아기집 하나는 작고 불안정했다. 아이 때문에 맘고생도 많이 해서 남은 한 아이가 잘못될까 하는 생각에 떠난 아이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을 하진 못했다. 결혼 7년 만에 첫 번째 시험관시술로 쌍둥이를 갖는 데 성공했고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말에 흰색 몰티즈 여자아이를 분양받았다. 이름은 보리라 지었다. 평소에도 흰색 개가 좋았고 아들을 키우니 강아지라도 여자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YOON, <태몽>, 2025,

Gauache on shaped canvas, 23cmx29cm


딸 키우는 마음으로 예쁘게 정성껏 키웠고 힘든 시기마다 보리는 묵묵히 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불현듯, 내 손을 놓친 하얀 진돗개가 생각났다. 15여 년 전 남편과 병원을 나오며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라고 작별 인사 했었던 기억도 나고 -우리에게 더 이상의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아들에게도 태몽이야기며 쌍둥이 얘기를 해준 탓에 그때 그 아이가 딸이었을까.. 하며 못내 아쉬운 듯 그리운 듯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보리가 나에겐 딸 같고 아들에겐 여동생 같은 존재이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나보다 먼저 하늘로 떠날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함께 사는 것이라 했는데... 11살인 보리가 요즘 병원 갈 일이 많아졌다. 하얀 진돗개처럼 보리도 먼저 내 곁을 떠날 것이다. 꿈에서는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보리에게만큼은 따뜻한 작별을 꼭 건네고 싶다.

그때가 꽤 오랜 후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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