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피오레(Fiore)

by 녹명

거실 한 구석에 오래 자리를 지키던 행운목이 16년 만에 꽃을 피웠다. 처음엔 올라온 갈색의 꽃대를 보고는 잘라 버려야 하는 죽은 잎인 줄 알았다. 예전에 시어머니께서 행운목에 꽃이 피었다고 좋아하시며 자랑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꽃망울 같은 것이 맺히는 듯싶더니 별모양의 하얀 꽃들이 피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귀한 꽃이라더니 쉬이 피지 않고 꽃이 피기까지 기대와 설렘으로 지켜보게 만들었다.

17여 년 전, 이사 온 기념으로 시어머니께서 키우던 행운목에서 분갈이한 새끼 행운목을 선물로 주셨다. 그때는 5살 아들을 키우느라 정신없고 늘 지쳐있을 때라 한편으론 저걸 왜 갖다 주실까... 일거리만 늘어나겠군 하는 생각뿐이었다. 당연히 신경도 잘 쓰지 않았고 저러다 죽겠다 싶을 즈음에야 미안해서 물을 들이부었다.

토도독 뿅뿅하고 귀엽고 깜찍한 별 모양의 꽃들이 폭죽이 터지듯 만개한 모양과 달리 향기는 꽤 매혹적이고 농염해서 깜짝 놀랐다.

YOON,<행운>,2024 Oil &Oil pastel on canvas,53cm x45.5cm


특히, 밤이 되면 향기가 더욱 짙어져서 새벽에도 나가서 향-백합 향과 비슷한-을 맡으며 앉아있었다. 가장 조용하고 개인적인 시간에 더욱 향기를 발하는 행운목 꽃은 이중적이고 반전이 있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집에서 키우는 행운목은 꽃을 피우기 어려워서 귀하다 알려져 있다. 수년, 길게는 10~2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거나 꽃 피는 걸 볼 수 없다 하는데 그런 귀한 꽃이 어떻게 우리 집에 찾아왔는지 내심 무심했던 나의 행동이 미안해지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동안 남편과의 삶의 리듬과 박자를 맞추어가는 길과 사춘기 아들과의 전쟁 같은 시간을 꾸역꾸역 견디며 포기하고 싶은 많은 순간에도 흔들릴지언정 결국 내 자리를 지켜냈던 몸부림과 절규, 나의 눈물을 모두 지켜보았던 행운목이 수고했다고 잘 버텨냈다고 위로해 주는 향기로운 편지 같았다.

문득, 행운목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도 애정도 덜 받으며 거실 한 구석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내며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 네가 정말이지 대견했다. 서로 토닥이고 기특하다 이야기를 나눠야 할 듯싶다.

행운이라 느끼는 것은 갑작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해야 한다. 유세 떨지 말고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는 존재만이 누군가에게 행운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행운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

뜻밖이어서 더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모습과 향기를 드러내는

행운목꽃처럼...

꽃이 지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행운목과는

같은 길을 지나온 친구처럼... 전우처럼...

훨씬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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