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이가 보일러실 박스 안에 새끼를 낳았다. 우리는 새끼를 가졌는지도 몰랐고 더 놀라운 것은 우리는 살찐이가 암놈인지 수놈인지도 몰랐다. 새끼 때부터 특별히 성별을 알 필요를 못 느꼈다. -생각해 보면 같이 살던 시기에 한 번도 임신을 하지 않은 걸 보면 수놈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살찐이가 수놈이었다면 살찐이가 아닌 걸 확신했을 텐데...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살찐이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가만가만 새끼들을 구경하러 보일러실을 들락거리면 살찐이는 경계하지 않고 우리에게 새끼를 보여주고 만지게도 했다. 옆 집에 큰 개가 어떻게 우리 집으로 넘어왔는지 새끼 한 마리가 물려 죽는 일이 생기고 큰오빠는 빨리 새끼 고양이를 입양 보내고자 광고를 내고 결국엔 모두 입양을 보냈다. 큰오빠의 그런 적극적인 모습은 꽤 낯설었다. 어쩌면 큰오빠는 자신이 살찐이를 산에다 놓아줬다는 사실에 가장 크게 자책하고 있었던 걸까... 아빠는 어디서 알아보셨는지 불임 수술을 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야 살찐이가 고생을 안 한다 하셨다. 반려견이나 길고양이들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동물병원도 멀리 찾아가는 시절이었다. 종이박스에 살찐이를 넣어 가시던 아빠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집에 오자마자 살찐이는 한 마리 남은 새끼에게 다가갔는데 병원 냄새가 나는지 살찐이를 피했다. 눈치 보던 살찐이의 모습에 화가 나고 그런 새끼 고양이가 미웠다. 미역국도 몸보신도 시켜주지 못했다.
주택가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빌라로 재건축하는 바람이 우리 골목에도 불었다. 거의 마지막으로 집을 팔고 이사를 결정하게 된 우리는 점점 집에 들어오는 간격이 뜸해진 살찐이가 맘에 걸리긴 했지만-이사 가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이- 그렇다고 고양이를 아파트에 데리고 산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마음이 많이 무거웠지만 우리는 살찐이가 동네에서 잘 살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사 가는 날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슴 한편에 작은 가시가 돋아난 걸 그때는 몰랐다. 영영 빠지지 않을 가시...
YOON,<안녕>,2025,Oil pastel& acrylic on paper,45cm x33cm
벚꽃의 피고 짐을 수십 번 지켜보는 동안, 반려견, 반려묘, 유기견, 길고양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방송들이 많아졌다. 그런 방송을 보며 분노를 터뜨리며 욕하기도,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리기도... 불현듯 잊고 있던 살찐이가 떠올랐다. 20여 년 전 가슴 한편에 돋아났던 작은 가시는 송곳이 되어 나를 찔렀다.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과 자괴감은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거칠고 깊은 울음을 토해냈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도 길고양이들이 보였다. 지치고 불안한 눈빛에 어린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본 날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고양이들이 잘 다니는 화단 구석구석에 봉지 밥을 몰래 던져놓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면 빈 봉지임을 확인하고는 내 배가 불렀다. 살찐이가 강원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과 그 길에도 먹여주고 잠자리를 내어 주던 사람들 덕분에 집으로 올 수 있었겠구나...'마당 있는 주택에서 캣맘으로 살기'가 버킷 리스트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유기견, 길고양이 돌봄 단체에 관심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한다.
‘처음’이란 설렘, 순수함, 무한함... 동시에 무지함, 서툼, 불안, 후회와 같은 이름임을... 내 마음 한구석에 아픈 가시처럼 박혀있는 나의 첫 고양이 살찐이. 우리의 무지함에 받았을 상처와 따뜻하고 부드러운 네가 외로이 영영 차갑게 부서져갔음에 숨이 턱 막힌다. 부디 추운 겨울만은 아니었었기를... 매 순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당당하게, 우아하게 걸어갔던 네 발걸음과 늘 따뜻했던 눈빛을 기억하며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나이길, 그렇게 따뜻하고 너그러운 눈빛과 손짓을 건네는 나이고 싶다.
빛바랜 앨범 속에 살찐이의 흑백 사진 한 장이 있다.
차마 그 사진을 볼 수가 없다.
아니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다.
천국에서 기다릴 나의 고양이 살찐이...
그때는 한눈에 알아볼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