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살찐... #1

by 녹명

* 안녕... 나의 첫 고양이 *


사사삭 스르륵 ,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거실에 쥐가 책장 뒤편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눈앞이 희미해지며 심장이 순간 멈춘듯하더니 화산이 폭발하듯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온 식구가 나에게 달려왔다. 아빠는 그럴 리 없다고 나를 달래고 헛것을 봤을 거라며 안심시키던 오빠들도 진정을 못하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난 확신할 순 없다. 환상인지... 실제인지...


어렸을 때 제일 공포스러웠던 것은 비가 온 후 길거리에 배가 터져 죽어 널브러져 있던 쥐들의 출현이었다. 떠돌이 개들도 무서워하지 않던 나에게 그 광경은 나를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자란 단독주택도 가끔씩 천장에 쥐들이 뛰어다니고 마당에도 출몰했다. 세월이 갈수록 집은 늙어갔고 쥐들은 더 튼실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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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비와 나>,2025,Oil pastel& acrylic on paper,45cm x33cm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고양이 키울래? “ 엄마가 물었다.

시장 방앗간 집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한 마리 키우는 건 어떠냐며 엄마와 고양이를 보러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세히 본 새끼고양이는 너무나 예뻤다. 그 길로 나는 집사가 되었다. 가족들과 회의 끝에 이름은 살찐이가 되었다. 토실토실 살이 찌라고 지어주었다. 치즈냥이 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반려견, 반려묘의 개념도 없었고 당연히 우리는 지식도 없었으며 고양이는 재수 없는 동물이라고 여겨지던 때였다. 그러나 새끼고양이는 그야말로 나를 완전히 홀려버렸다. 새끼고양이의 매력에 온 식구들이 빠져들었다. 소파, 이불, 내 옷 그리고 집 안 곳곳이 고양이털로 난리가 났지만 학교가 끝나도 저녁까지 혼자 있어야 할 집에 오기가 싫어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집으로 오던 나를 날아오게 만들었고 살찐이와 보내는 시간은 갑옷 같던 내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만들었다. 아! 생명은 따뜻하고 부드럽구나. 그런 살찐이에게 첫 발정기가 왔다. 그때는 발정기가 뭔지도 몰랐을 때고 우리는 집 나간 살찐이를 부르며 온 동네를 울며 불며 찾으러 다녔다.

우두커니 있다가 쫑긋, 뒤돌아보다 툭, 고개를 떨구기에 지칠 무렵 살찐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났다. 그날 이후 우리는 고양이의 습성에 대한 지식들을 여기저기서 주워 들어 알게 되었고 그런 사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살찐이가 집 밖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났고 손님처럼 집에 들락날락거린 탓에 살찐이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YOON, <My childhood home>, 2025,

Acrylic on canvas, 53cm x 40.9cm


종일 밖에서 놀다가 거실로 들어온 기척에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살찐이에게 반갑게 다가간 순간 비명이 폭발하듯 공기를 찢었다. 살찐이가 쥐를 잡아온 것이었다. 가족들은 먼저 내 비명소리에 놀래고 쥐를 보고 한번 더 놀래 자빠졌다. 그 후론 다시는 쥐를 잡아오지 않았다. 그 쥐가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한참이나 지나고 알았다.

새끼 때부터 배변하는 것을 보지 못할 정도로 살찐이는 깔끔했고, 퇴근하는 엄마 아빠가 올 시간이 되면 놀다가도 골목 어귀에 나타나 엄마 아빠 앞에서 구르고 번팅을 하며 야옹거렸다. 그런 행동들이 무슨 뜻인지도 한참이나 지나고 알았다. 나에게는 발톱도 맘껏 맡기며 안겨있었다. 고양이는 발톱 깎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면 많이 칭찬해 줬을 텐데 말이다.

살찐이가 정원의 나무처럼, 꽃처럼 그렇게 당연한 존재가 되어갈 무렵 큰오빠의 군복무지 근처 야산에 살찐이를 풀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무렵 살찐이는 집 보다 바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는 사료의 개념도 없고 집에 들어왔을 때 남은 생선이나 밥을 주었고 내가 먹던 요플레 뚜껑을 핥아먹는 게 간식이었다. 우리는 살찐이가 더 자유롭고 행복할 것이라 믿었고 그렇게 살찐이는 오빠의 차에 실려 떠났다. 섭섭하긴 했지만 우리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진정 몰랐다.


벚꽃이 서너 번쯤 피고 졌을 즈음 한 날 마당에서 고양이 소리가 났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열려있는 현관으로 갑자기 당당한 걸음과 도도한 눈빛의 노란 고양이가 들어왔다.

예전에 살찐이가 다녔던 집안 곳곳을 누볐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집 찾아온 백구도 아니고 고양이가 강원도 산속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3~4년이 지나서...?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온전히 확신할 수 없으나 우리는 살찐이가 돌아왔다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나는 두려웠다. 복수하러 온 걸까? 왜 날 버렸냐고? 내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는지 아냐고? 내가 잠들면 배게 맡에 쥐를 10마리나 잡아두는 것은 아닐까? 살찐이는 뒷산에 며칠 마실 다녀온 듯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집사가 되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