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 5

이상한 나라로 간 앨리스

by 김민정


차트와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의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지안을 바라보며 덤덤히 통보했다.

-유감스럽게도 뇌종양 1기입니다. 두통이 더 심해지면 위험하니까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얼마 전부터 두통이 너무 심해서 건강검진에 뇌검사를 추가했던 지안은 의사의 소견을 듣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도통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잠시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시선을 바닥으로 멍하게 고정시킨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엄지 손가락의 굳은살을 뜯으며 불안한 심정을 드러냈다. 내가 암이라니. 이제껏 다른 사람들의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지안이 바로 그 무서운 병에 걸렸다니. 혼란스러운 감정을 목소리에 힘겹게 담아 간신히 한마디 내뱉었다.


-네.... 선생님... 그래도 이 정도면 위험한 건 아니죠? 넉 달 안으로는 별일 없겠죠? 제가 아이가 둘이나 있어서요... 첫째 아이 기숙사 학교라도 좀 보내면 수술하고 싶어서요...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자꾸 미루면 큰일 나는 거 아시죠? 최대한 조심하셔야 전이 시기를 늦출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이되면 큰일 납니다. 지금은 1 기지만 3기로 번지면 매우 위험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울먹이는 지안을 빤히 바라보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지만 단호하게 한마디 던지셨다.

어머님, 어머님 인생도 소중하다는 거 아시죠?

아이들은 엄마의 행복을 먹으면서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럼 넉 달 후로 수술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지안은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받아 들고 쓸쓸하게 터벅터벅 학원가 사거리를 걷기 시작하다가 공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서 조용히 기도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평소 생기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삶의 무게를 가득 얹은 두려운 표정으로 그렇게 성당으로 들어와 예배를 드리던 그녀는 기어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자신의 인생이 허무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겨우 넉 달 남았는데, 딱 넉 달만 버티면 인플루언서로 활발하게 강연 활동을 하면서 태희와 대전에서 논술 학원 차려서 승재만 열심히 케어하며 살 수 있었는데, 그 넉 달 사이에 이런 날벼락같은 진단을 받게 되다니 역시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암 통보를 받은 그날 이후,

지안은 하나씩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아직 그녀의 병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걱정거리를 안겨드릴 수 없었고, 남편에게는 더 이상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병원치료를 계속 받으려면 목돈이 필요했다. 보험을 들어놓지 못했던 그녀는 늘 자신의 비상금을 털어서 치료비에 보태곤 했다. 치료를 하려면 당장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승현이가 학교를 간 오전 사이에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진짜 급할 때는 옆 동네에 가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여태 강남의 다른 엄마들처럼 사치를 부릴 줄도 몰랐다. 오로지 아이 교육을 위해서만 작정하고 입성했기에 허세를 부릴 여유도 낭비를 할 돈도 없는 처지였다. 남편은 이 동네에서 꽤나 오래 학원을 운영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였으며 돈만 생기면 승재 치료비 때문에 친정에 돈을 가져다주는 통에 늘 자신은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다. 매달 여유는 없었고 대출에 쪼들리는 삶을 살아야 했기에 생활은 늘 허덕였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금 뇌에 암까지 생겨버린 것이다.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승현이의 입시와 승재의 케어가 더욱 급했기에 수술을 딱 넉 달만 미루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승현이는 이제 중학교 2학년 초반에 접어들었으니 빠르면 넉 달 이내에 영재고 조기입학을 노려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전까지는 아이가 엄마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저 조용하고 빠르게 입시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병을 알고 나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하나씩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수술 후 입원이라도 하는 날에는, 회복까지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으며 재수 없으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병명을 알았을 때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몇 날 며칠을 우울한 환자처럼 지냈었지만 엄마이기에 엄마였기에 지금은 덤덤히 이 모든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무사히 헤쳐나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버텨나가고 있다.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첫째 승현이에게도 설거지며 빨래 돌리는 법, 간단한 계란프라이, 야채 볶음밥 등등의 요리를 일러주면서 슬슬 독립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고, 남편과의 잠자리도 소원해 진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어차피 남편은 계약 종료시점이 다가오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조용하고 신속하게 수술을 해치우고 싶을 뿐이었다. 아직 1기였기에 충분히 건강이 회복될 가능성은 있었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딱 4개월만 잘 버티면 되는 상황이니까.




저작권등록완료. 협업문의 환영.

초고 묘사 수정중.

작가 순수창작물이오니 도용 금지.

등장인물은 완전 허구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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