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el May 31. 2023

가로등

나는 알고 있다 그날의 일을..

나의 일상은 매일 똑같다. 쳇바퀴 돌 듯 늘 같은 시간에 불이 켜지고 같은 시간에 불이 꺼진다.

물론 가끔씩 어디서 뭐가 잘못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류가 나면 늦게 켜지는 경우도 있고

또 아침이면 빨리 꺼지거나 늦게 꺼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길건너 친구는 밝게 빛나는데 나는 어둠속에서 빛을 내보려고 애써지만 잘 안되는 날도 있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오늘같이 어두운 날 불도 안켜주고 말이야’,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게을러. 자기돈 아니라고 이렇게 휜한데 불을 켜놓고...’ 와 같은 불만들을 길에 던져 놓고 가기도 한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니 주변이 부산스럽다. 옆의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중에 아까부터 한 대의 차량이 갓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차에서 내렸다 다시 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좀있으니 경찰차도 오고. 자기들끼리 무언가 얘기하며 우리 앞쪽을 손짓으로 가리킨다.

그러다가 옆에 한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는 모습이 보인다.

좀있으니 트럭이 한 대와서 플래카드를 붙인다. 나는 거리가 멀어서 잘 안보여 그쪽 가까운 친구에게 물어보니 사고 목격자를 찾는 내용이 적혀있고 배상하겠다는 글이 전화번호와 함께 적혀 있단다.


어젯밤 늦게까지 길건너 친구와 수다중이었다. 누군가와 통하하며 소리지르는 사람, 풀숲으로 가서 두리번거리다 노상방뇨하는 사람, 한잔했는지 이유도 없이 짜증내며 우리를 발로 차는 사람, 신호위반과 과속을 밥먹듯 하는 사람 등의 이야기가 매번 우리 수다의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있는 길은 약간 한적한 곳이기도 하지만 23시가 넘어가면 차도 사람도 구경하기가 어렵다. 간혹 지나는 차가 보인다해도 밤이 늦다보니 속도는 빨라지고 빨간 신호등에도 ‘너 뭐니?’ 하듯 무시하고 지나가 버린다. 어젯밤에도 저 멀리서부터 뭐가 그렇게 바쁜지 달려오는 차가 한 대 보였다.

앞쪽에 보행 신호등이 있지만 01시쯤, 그 시간에 보행자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하겠지.

사람이 길을 건너는 중인데도 속도를 낼 때는 보이지 않나보다.

그만 달려오는 차가 사람과 부딪혀버린 것이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사람은 저만치 뒹굴고 있었다. 차도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잠시 세상이 정지된 것 같았지만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20대 중후반 정도의 젊은 남자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길에 누운 그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손끝으로 흔들어 보고는 꼼짝하지 않으니 주춤거리듯 뒷걸음치다 본인 차에 다시 타버린다. 그리고는 차는 그대로 가버리고 그 차에 부딪힌 그 사람은 그대로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어스름한 새벽쯤 응급차, 경찰차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그 사람은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을테지. 다시 주변은 날이 밝아질 때까지 고요했다.


지금 저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사람은 쓰러진 사람의 아내인가 보다. 그 사람은 어찌되었을까?

왜 그 늦은 시간에 이 길을 건너게 되었을까? 사고를 내고 도망간 그 젊은 남자는 죄를 지었는데 어쩌고 있을까? 경찰은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길건너 친구는 우리가 말해주지 않으면 범인을 찾기 어려울거라고 했다. 그렇겠지 목격자는 우리인데..

우리말이 경찰에게 전해지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될 수 없다보니 좀 답답하다.

하긴 이곳에 있으면 답답한 경우가 어디 한두번이었나.

하품이 밀려온다. 사람들의 생활이 시작되는 아침이면 나의 불은 꺼지고 수면에 들어가야 한다.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되는 저녁이면 이곳은 저 플래카드만 남고 평소와 같겠지. 씁쓸해진다.

친구들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작가의 이전글 핸드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