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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Jul 18. 2023

지렁이의 일기

롤러코스터 인생....마이네임이즈 렁이 지

 비가 줄지어 오는 것이 싫다.

적당하게 내릴 때는 집에 들어온 물을 피해 땅 위로 바람 쐬며 숨도 쉬고 나들이라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쉴새없이 내리는 비는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비가 띄엄띄엄 몇일째 내리고 있다.

내가 사는 집도 비로 인해 난리인데 집주인은 거실에 물이 범람했다며 난리다.

가족들이 총동원되어 물을 퍼내는 눈치다. 화장실 변기 물도 역류했다나 어쨌다나.

배관 어디서 물이 역류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시청에 전화한다.

통화중이라며 짜증내더니 몇 번만에 통화가 된 모양인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지난번에 마을 주변 배관공사 한다고 온 땅을 파헤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뭐가 잘못된 모양인가 보다. 그때 내가 살고있는 집 뿐만 아니라 우리 땅속 마을이 난리가 났었다. 그즈음 죽은 우리 지렁이 가족들도 셀 수가 없었다. 나 역시도 그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은 것이다.

집을 잃고 방황하다 이 집 마당 한켠에 내 집을 마련했다. 그러고는 잠잠한가 싶었다.

나는 이집 마당이 적당하게 습하기도 하고 물빠짐도 좋아 살기 좋은 동네라고 땅속 친구들에게 자랑했었다.

그리고 이 집 막내딸이 나에게 친절하다.

내가 밖에 나와서 꼬물거리거나 몸을 오무렸다 펴면서 길을 갈 때는

신기한 듯 쳐다보며 본인의 가족들을 불러 세우기도 한다.

그러면 그 엄마는 말한다. ‘어머, 지렁이네! 요즘엔 지렁이도 보기 어렵던데’ 라고 하면서

지렁이가 땅속에서 땅을 뒤집고 흙을 섞어주는 일들이 땅을 위해 좋은 거라며

건강한 땅을 위해서는 지렁이가 정말 필요하다고 우리를 치켜세워주었다.

다만, 나는 친구들과 땅속에서 즐겁게 춤추고 놀 뿐이었는데 그게 땅한테 좋은 일이라고 하니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오후가 되니 햇살이 방실방실하고 물에 점령당했던 거실도 웬만큼 정리가 된 모양이다.

시청 직원도 와서 집주인 아저씨와 대화하고는 이내 갔다.

이제 나도 집에 가야한다. 햇살이 더 타오르기 전에 땅속마을 내 집에 가야하는데

몸을 아무리 오무렸다 펴도 그 자리인듯 하다.

바닥이 흙과 만났을 때의 편안함이 없고 까끌까끌 거칠다.

바닥에 축축함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물이 완전 빠진 자리에서 내몸이 닿인 곳은 흙이 아니였다.

집 마당에 듬성듬성 박힌 시멘 발린 바닥돌인 것이다. 큰일 났다.

다시 얼굴보인 햇살은 막무가내로 그 빛을 퍼붓고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곳을 벗어나 집으로 가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힘을 들이는 만큼 내 몸에서는 더 큰 힘이 빠져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온몸의 수분을 모아 움직이는데도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대로 널부러진다.

‘엄마! 지렁이가 죽어.있.&*|$%!......’ 희미하게 들리는 막내딸의 목소리만 웅웅거릴뿐.


기운을 차리고 보니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이 느껴진다. 아까는 분명 죽을 것 같았는데.

불현 듯 희미하던 막내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맞아! 분명 내 힘으로는 올 수 없었는데 내가 이렇게 숨쉴 수 있는 건 그 아이 때문일거야.

뭉클해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온 몸으로 기억해둬야겠다.

나는 다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아무래도 오래오래 장수할 모냥이다.

롤러코스터 인생. 땅위에서 사람들 사는거나 땅속에서 내가 사는 거나 별반 다르지가 않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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