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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May 23. 2023

피아노

처음 피아노를 칠 때

피아노를 좋아한다. 피아노 치는 남자를 좋아한다. 남편은 동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피아노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아들이 피아노를 잘 치기를 기대해본다. 어릴 때의 아들은 제법 관심을 보인다. 출근한 나에게 전화해서 본인이 생각해낸 멜로디라며 유선상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참으로 기분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 살 씩 나이가 보태지는 아들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피아노와 조금씩 조금씩  거리가 멀어져가는 것이었다. 엄마가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아들은 엄마의 생각과 다르게 피아노를 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본인이 치고 싶을 때만 가끔씩 치는 모습이다. 그런게 나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닐 때 원에서 반강제적으로 적금을 넣게 되었다. 유치원 졸업 할 때 손에 쥔 금액은 약 백만원을 웃돌았다. 나는 그돈으로 아들과 의기투합해서 중고 영창피아노를 샀다. 그때만 해도 아들도 피아노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피아노의 덩치가 크다. 그 덩치에 맞게 울림통도 크다. 피아노에 열쇠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오래전 부잣집 딸이 사용하던 피아노인 모양이다. 새 피아노를 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처한 경제적 환경이 그리 녹록치 않았기에 오래되고 덩치크고...그럼에도 나는 너무 좋았다. 피아노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 그 피아노로 아들이 학원과 집에서 연습할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행복했던 것 같다. 나도 쳐보고 싶었지만 콩나물이 가리키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던 것이다. 학교다닐 때 뭐했는지 원.쯧쯧....나는 음맹인 것이다. 그것이 너무 싫어 언젠가는 나도 피아노를 배워야겠다고 마음속에는 늘 원이 있었다.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 세 개가 있다. 버킷리스트쯤 될려나?. 그 한가지가 피아노였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왔다. 약 6년 전 11년을 다녔던 직장을 떠나야했다. 여러 생각의 혼선으로 마음이 뒤흔들렸지만...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실업급여 받는 백조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구직활동과 나의 일상을 함께 해야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 즈음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실업급여 기간 약 4개월을 남겨두고 학원에 등록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나를 위해 돈을 투자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주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아주 기초부터 해야만 했고 학원에서도 이해해주고 잘 가르쳐 주었다. 나는 처음 배우는 학생인지라 집에서도 열심히 뚱땅거렸으나 굳어진 손가락은 내마음을 따라주지 않아 야속할 뿐이었다. 바이엘부터 시작해서 아주 조금씩 진도가 나가는 것이 뿌듯하고 행복했다. 체르니에 들어가 연습할 즈음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고 재취업을 해야하는 상황이 피아노에만 올인할 수 있게 도와주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재취업을 하고 피아노와 조금씩 거리두기가 되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언제 피아노를 배웠지‘라고 할만큼 잊혀져버린 것이 되었다. 그렇게 열망했었고 지금도 열망하면서도 나는 쉽게 피아노를 만져보지 못하고 있다. 잘 치는 사람을 부러워만 할 뿐. 그런 내가 싫다.


그때 구입한 중고 피아노는 지금도 집에서 잠자고 있다. 우리 가족이 된지 이십여년. 과장을 좀하면 방한칸을 차지하는 그 피아노를 언제적부터 남편은 처분하기를 바랬지만 나는 아직 놓지 못했다. 그런데 요근래 내마음이 조금씩 변한다. 출근하는 중 길거리 플래카드에 ‘중고피아노 삽니다. 010-***-****’라는 번호에 눈이 번쩍 뜨인다. 변해가는 내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덩치 큰 피아노를 처분하고 이제는 가벼운 디지털 로 바꿔서 거실에서 유튜브 보면서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처음 소유한 그 피아노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중고피아노 삽니다에 전화도 못해보고 있다. 내가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의 기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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