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꽃가마를 타고 예쁘고 화려한 한복을 입은 이모할머니가 내 앞에 나타나셨다.
"꽃가마에 엄마를 태우고 같이 갈 거야."
이모할머니께서 우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요!"
를 외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꿈인지도 몰랐다. 너무 생생한 꿈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비틀비틀 일어나서 냉장고 안에 있는 차가운 물을 마셨다.
꿀떡꿀떡
잠옷이 젖을 정도로 거의 물을 붓다 깊이 마셨다.
정신이 확 깨어났다. 이건 무슨 꿈이지? 엄마를 데리고 간다고?
생전에 이모할머니는 엄마와 많이 친하게 지내셨다. 집에 가스 사고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꿈의 내용을 구글에 검색을 해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마지막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엄마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처음 접하는 상황은 언제나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나의 머리를 새 하얗게 만든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창가로 밝은 햇살이 비친다. 엄마와 추억을 쌓고 싶다. 엄마와 여행을 가기로 한다. 엄마와 나는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 못했다. 몇 년 전에 엄마 환갑이라고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다. 엄마는 실외에 있는 동굴 같은 곳에 있는 온천을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틈만 나면 일본 여행 이야기를 하셨다. 너무 좋았다고 너무 고맙다고 나에게 말했었다.
엄마의 건강이 우려되어서 이번 여행은 제주도로 가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여행. 슬프지만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
"엄마, 식사는 하셨어요?"
"밥은 먹었지.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요. 저랑 여행 갈래요?"
"무슨 여행? 돈 아껴서 시집가야지."
"무슨 시집? 생각 없어요."
"그러지 말고 시집가서 예쁜 손주 한 명만..."
"엄마,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제주도로 여행 같이 가요."
"나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그저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 그거 보고 가는 게 내 소원이야."
"엄마, 나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요. 잘 살고 있잖아요."
"내가 가면 너 혼자잖아. 그게 제일 걱정이야."
"엄마, 나 진짜 씩씩해요. 걱정 마세요. 내일 병원으로 갈게요. 그때 다시 이야기해요."
공항에는 많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간단한 짐만 챙겨서 가는 여행이다. 다들 바쁘게 움직인다.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대는 청년들을 보면서 나의 20대를 되돌아본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해외로 워홀을 갈 것이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해외유학을 가는 것을 꼭 해보고 싶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삶에 도전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도전하는 것이 두려웠다. 안정적인 삶이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비행기가 제주 공항 활주로에 닿는 순간,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 귀 아프면 껌 씹어요.”
“괜찮아, 나 옛날에도 비행기 많이 탔었어.”
엄마가 기분이 좋으신지 웃으면서 농담도 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창밖으로 구름이 하얗게 밀려나가고, 햇살이 기체에 부딪혀 눈이 시렸다. 그 빛에 비친 엄마의 흰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그 장면이 괜히 마음속에 박혔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바람과 야자나무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제주의 바람은 도시의 바람과 다르다. 소금기와 흙냄새, 풀냄새가 섞여서 살아 있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되었다. 엄마가 마스크를 벗고 바람을 맞으며 말했다.
“이 냄새 참 좋다. 옛날에 시골에서 맡던 냄새 같네.”
그 말에 나는 순간 울컥했다.
“엄마, 오늘은 감귤밭 갈 거예요. 직접 따서 먹어봐요.”
“좋지. 그래, 감귤밭이라니. 나 어릴 때는 그런 거 사 먹지도 못했는데. 우리 때는 감귤이 엄청 귀했거든.”
택시를 타고 우리는 넓디넓은 감귤밭에 도착했다. 감귤밭에 들어서자 햇살이 눈부셨다.
노란 감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귀엽게 동글동글 매달려 있는 귤들이 넓은 땅에 가득 있었다. 웃고 있는 노란 스마일 얼굴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하나를 따서 껍질을 벗기셨다.
“이거 달고 신선하다.”
엄마의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졌다. 엄마의 주름진 손가락 끝에 햇살이 닿았다. 그 손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엄마는 귤을 바지에 닦고 껍질을 까서 나에게도 먹어보라며 귤을 주셨다. 왜인지 가슴이 몽글몽글 해졌다.
그날 저녁, 숙소 근처에 있는 온천에 갔다. 엄마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몸이 녹는다.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네” 하셨다.
나는 몰래 엄마의 등을 바라봤다.
작고 여윈 어깨, 세월이 새긴 주름, 많은 점들.
그 모든 것이 엄마의 인생이었다.
“엄마, 물 온도 괜찮아요? 안 뜨거워요? 나는 엄청 뜨거운데요?”
“응, 좋아. 이대로 있으면 평생 피로가 다 풀릴 것 같아. 너무 좋다.”
'엄마랑 여행을 더 자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가 더 측은해 보인다.
해가 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 근처에 붉은 노을이 물들었다.
엄마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나는 노을이 참 좋더라, 파란 하늘이 저렇게 붉게 물들면 너무 예쁘잖아. 다시 태어나면 여행 많이 다니고 싶어. 사진 작가 해도 좋을 것 같아. 원 없이 여행을 다니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나를 좀 사랑해보고 싶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어. 나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서. 눈물을 꽉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저 엄마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엄마가 손등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너는 꼭 그래. 나처럼 살지 말고. 네가 가고 싶은 길로 가.”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엄마가 즐겨드시던 해삼, 멍게도 먹고 조개 구이도 먹었다.
칠흑 같은 밤이 깊었다.
숙소 창밖에는 파도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들려왔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진다. 나는 잠든 엄마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나 아직 엄마 없이는 살 자신이 없어요. 나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엄마가 잠든 줄 알았는데, 엄마가 몸을 뒤척이면서 천천히 대답하셨다.
“괜찮아. 넌 잘할 거야. 엄마 딸이잖아. 여행 같이 와줘서 너무 고마워.”
내 심장이 천천히 녹으면서 목이 매이고 눈물이 베개를 적혔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불고, 파도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눈물을 훔치고 바람을 쐬러 마당에 나왔다.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꺼이꺼이 소리를 내고 울 것 같았다.
하늘을 쳐다봤다. 깜깜했지만 유난히 밝은 별들이 많았다. 나중에 엄마도 저렇게 별이 되면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