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은데, 와서 한 번 먹어봐. 간이 잘 맞나."
"오늘 김치는 저번 김치 보다 더 맛있게 담그셨네요. 진짜 맛있어요. 감칠맛도 나고, 엄마 수육 다 삶아졌으니까 얼른 수육하고 김치 같이 먹어야겠어요." 침이 입가에 맴돈다.
"설탕 더 안 넣어도 돼? 너는 나보다 달게 먹잖아. 나는 괜찮은데... 설탕 더 넣을까?"
"아니요, 감을 넣어서 그런지 맛있는 단 맛이 나서 너무 맛있어요."
엄마가 이번 주말에는 내가 쉬는 날이라고 김장을 하신다고 2주 전부터 계속 시간을 비우라고 엄포를 하셨다. 김장하는 날에는 엄마와 같이 시장에 가서 김장 재료를 산다. 엄마가 모든 재료를 들고 오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무겁다 힘들다 불평 한 마디 하시지 않으신다. 힘든 거 다 아는데도, "하나도 안 무거워."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몸이 아프시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프다고 더 누워있지도 못해. 일어나야지. 할 일이 산더미인데... 누워있으면 머리가 더 아파." 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고는 했다.
엄마는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강한 엄마가 되셔야 했다. 나는 엄마가 밝게 크게 웃는 표정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펑펑 우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화가 나실 때는 냄비를 세게 문지르셨고 걸레로 바닥을 세게 닦으셨다. 그렇게 화를 속으로 삭이면서 사셨다.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 먼저 만난 여자는 나의 어머니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해 주시는 분도 나의 어머니다.
그런 엄마에게 제일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살았다.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던 분도 나의 어머니다. 동시에 나를 제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마음 아프게 하셨던 분도 나의 어머니다.
나의 어머니는 어린 나를 좋아라 해주셨다. 하지만 나의 아픔을 헤아리는 능력은 없으셨다. 엄마는 항상 말이 없으셨다. 어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무거운 짐의 무게를...
자신을 관리하지 않고 엄마가 엄마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엄마가 엄마 자신을 사랑했다면 어린 나에게 좀 더 많은 표현을 해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엄마는 어떤 색깔 좋아해? 내가 그림 그려줄게요. 나는 파란색이 좋아요. 나는 하늘을 좋아하거든요. 하늘은 예쁜 구름도 안고 있어서 하늘이 좋아 보여요. 하늘 색깔이 너무 예뻐요."
어린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지 묻고는 했다.
"잘 모르겠어. 아무거나... 아무거나 네가 골라서 그림 그려줘."
엄마는 자신이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추석이 되기 전에 엄마에게 예쁜 새 옷을 사드리기 위해서 엄마와 함께 옷가게에 갔었다.
"검은색은 예쁘지 않은데요? 다른 색깔 골라봐요."
"나는 검은색이 제일 좋은 것 같아."
"왜 검은색이 좋아요? 예쁘지 않은데요? 좀 밝은 색이 얼굴도 환해 보이고 좋잖아요."
"오랫동안 입어도 얼룩이 안 보이니까 검은색이 제일 좋아. 이걸로 할래."
한 번 결정을 내린 엄마 고집은 꺽지 못한다. 이렇게 매번 엄마는 검은색 옷만 사신다.
쇼핑을 하고 배가 고파서 식당에 가기로 했다.
"엄마,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없어요? 뭐 먹을까요?"
"뭐... 아무거나."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까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드시고 들어가게요."
"그냥 저기 순댓국 먹으러 갈까?"
"그래요."
나는 순댓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드신다길래 그냥 순댓국 식당에 갔다.
엄마는 순댓국을 맛있게 드시고 집에 와서는 배가 아프다며 누워계셨다.
"어깨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갈까요? 언제부터 아파요?"
"몰라, 좀 오래됐어."
"근데, 왜 이제야 말씀을 하세요?"
"괜찮아. 엄마는 잘 참잖아."
"아픈데 참는 게 제일 어리석은 거래요? 아픈데 참았다고 자랑하면 큰일 나요. 바로 병원에 가셔야죠."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많이 아프셨을 텐데... 왜 이제 오셨어요? 약 처방해 드릴게요."
"아프다 괜찮다가 반복되니까 괜찮은 줄 알았죠. 내가 예민하지 않은 건지 잘 참는 건지 아픔을 잘 못 느끼나 봐요."
엄마는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는다. 아픔을 잘 못 느끼겠다고 한다. 그리고 아픈 것을 참는다. 그게 자랑인 듯 말씀하신다. 나는 안다. 엄마가 병원비를 걱정해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김치를 참 맛있게 담그시는 엄마 요리를 정말 잘하셨다. 된장찌개, 돼지등갈비를 넣고 푹 삶는 김치찜, 계란말이, 오징어불고기, 카레, 짜장, 김치찌개, 배추김치, 무생채, 깍두기, 열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멸치볶음, 제육볶음, 소불고기, 소갈비, 오징어채볶음... 모두 다 나열을 할 수는 없지만 엄마의 음식은 일품이었다.
이제는 맛볼 수 없는 엄마의 요리가 그립다. 엄마와 함께 먹었던 저녁 식사가 그립다. 엄마와 함께 김장을 담갔던 시간도 그립다.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추억이 다시 현실이 될 수없음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