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그때의 기록 04
어느새 1월도 중순을 향하고 있다. 새로운 계획이 흐려질 때쯤 여기저기서 졸업식 소식이 들려온다.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생각해 보면 끝만 있는 순간은 없었다. 언제나 그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졸업식 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아래층 후배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선배는 졸업식에 왜 안 갔어요?"
"뭔 졸업식?"
"오늘 1 대대장이랑 5 대대장 애들 졸업식이잖아요.
5대대 가족들은 다 갔다던데..."
"그런 거까지 가야 하는 거예요?"
"5대대 가족들 다 갔으니까 비교될 거잖아요."
"난, 졸업식인지도 몰랐네!"
다음날, 하루 세 번 오가는 군버스를 타고 하양시내에 갔다. 먼저 아이의 병원에 들렀다가 미용실로 향했다.
아이의 미용이 끝나갈 무렵 전날 졸업한 딸과 함께 대대장 사모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쭈뼛 인사를 건넸지만, 어쩐지 겸연쩍고 어색했다.
미용실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제과점이 눈에 보였다.
버스 시간까지 여유도 있고, 전날 후배의 말도 떠올라서 작은 케이크 하나를 샀다.
다시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모님께 케이크를 내밀었다.
"어제 졸업식이었다고... 제가 몰랐어요.
별거 아니지만 축하의 마음이에요."
"뭘, 이런 걸. 고마워요!"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퇴근한 남편이 다짜고짜 화를 냈다.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뭔 소리야? 내가 뭔 짓을 했다고?"
"대대장 집에 케이크 사다 줬어?"
"사다준 게 아니고 미용실서 만났는데, 애가 졸업했대서... 근데 그게 뭐?"
"내가 얼마나 쪽팔린 줄 알아?"
"그러니까, 뭔 소리냐고?"
그날 남편은 1 중대장과 함께 대대장실에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
보고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대대장님이 불러 세웠다.
"3 중대장! 가족이 우리 애한테 케이크를 사준 모양인데, 그런 거까지 챙기지 않아도 되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시라고해."
남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단다.
혼자도 아니고, 그 말을 들은 1 중대장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했겠냐고.
마치 가족 내세워 아부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봐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났단다.
"그냥 모른척하기도 그렇고, 축하할 일이니까 케이크하나 사준 건데..."
남편이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그 후로도 몇 번, 같은 상황이 있을 때 그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그때마다 내 행동에는 조심스러움이 더해졌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하라고? 말라고?
시간이 흘러 소령 진급을 하고 광탄의 특공대대 작전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친한 사모님이,
"대위까지는 몰라서 그랬다면 이해해 주지만, 소령 달고도 몰랐단 소리는 안 통해. 그러니까 대대장 사모한테 눈치껏 잘해야 해." 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다.
대대장 사모님은 운전을 할 줄 몰랐다. 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유치원, 딸은 어린이 집에 보내고 있을 때였다.
사모님은 오전엔 거의 움직이지 않다가 오후에 일을 봤다.
관사에서 고양동 시내까지 오 킬로쯤. 일주일에 두 번쯤 같이 가자며 전화를 했다.
그럴 때면 내 볼일이 없더라도 관사로 가서 사모님을 모셔야 했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나니 슬슬 짜증이 났다. 아이들 보내고 좀 일찍 움직이면 좋으련만,
오후에 움직이니 아이들이 올 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때마다 중대장 가족에게 아이들을 부탁해야 하는 미안함과 아이들을 맞아주지 못하는 속상함이 함께 밀려왔다.
어느 날 남편과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뭐라 할지 모르겠는데, 난 너무 힘들어."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뭘 했다고?"
"뭐라고? 진급, 생일, 결혼기념일까지 꽃바구니 샴페인 챙기고 맨날 운전하고.
그건 둘째 치고,
그 시간에 애들을 방치하는 게 젤 화나고 짜증 난다고!"
"그럼, 하지 마! 누가 하랬어?"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사모님이 전화를 했다.
"지금 나가고 있는데 같이 갈래요?"
두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가야 돼? 말아야 돼?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졌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사모님, 죄송한데 오늘은 안될 거 같아요.
아이들 돌아올 시간과 겹치고 아이들을 부탁하기도 미안해서요."
사모님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그래서? 안된다는 거야?"
"네, 죄송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았어요!"
'뚜뚜뚜' 통화 끊긴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가슴까지 벌렁거렸다.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아도, 커졌던 심장의 진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후로 사모님은 더 이상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대대 가족 모임도 더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이 흘러,
육대 교육을 받으러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대대가족들과 밥도 먹지 못하고 이사를 가는 날,
보직도 다 마치지 못하고 가서 죄송하다며 전화로 인사를 대신했다.
오 개월쯤 후,
남편이 송추로 발령을 받아 다시 이사를 왔다. 송추에서 광탄은 삼십 분쯤 거리였다.
대대장은 그때까지 후임 과장을 받지 못한 채, 이임식을 준비 중이었다.
사모님께 전화를 했다.
"사모님, 안녕하셨죠?
이임식 날 미용실 가실 때 모실 가족 없으시면 제가 모시고 갈까요?"
생각지도 않은 내 전화에, 사모님은 그렇잖아도 걱정 중이었다며 반가워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사모님 곁에 있었다.
다음날 따듯한 물과 커피를 챙겨 관사로 들어섰다. 이삿짐을 싣고 있었다.
관사를 떠나며 사모님은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작은 선물과 함께 봉투가 하나 들어있다.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고 끝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가득 채운 손편지였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명절 인사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갔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