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팔자 좋은 여편네들 -그때의 기록 03

by 노을

베란다 창고에서 물건을 찾는데 구석에 있는 태극기가 눈에 띈다.

"왜 태극기를 구석에 처박아뒀어?

이제 민간인이라는 거야?"

"뭔 소리야? 그냥 둔 거지. 처박긴?"

"하기야, 이제 태극기 안 달았다고 혼낼 사람도 없잖아!"





현충일이 금요일인 연휴였다.

시댁의 행사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 진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 태극기 달았나?"

"난, 안 달았는데!"

"나도 생각 못했네!"

"어떻게?"

"아이씨! 어쩌지?"


결국 우린 차를 돌렸다. 다시 이십여분을 달려오니 아파트가 보였다.

이미 거의 모든 베란다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베란다 잘 보이는 곳에 태극기 함이 있다.

부랴부랴 게양대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제야 제 자리를 잡았다는 듯,

파란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6•25가 있는 호국의 달, 현충일이다. 6월은 군인들에겐 의미가 깊은 달이다.

현충일부터 게양된 태극기는 유월 한 달 동안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필 그런 날 태극기를 깜빡한 것이다.


집집마다 게양 여부를 확인해 상황회의 시간에 세대수를 공개하고 여단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대대에 내려온 상황을 바탕으로 개인별 사유를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경고를 받기도 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확인하고 다시 차를 돌려 시댁으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 풀이 무성한 공터가 있었다.

부지런한 한 사모님이 두 줄 정도 텃밭을 일궈, 상추를 나눠먹곤 하던 곳이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고 있는데 부사관과 병사들이 그곳의 풀을 제거하고 이랑을 만들며 정리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

서로를 쳐다보지만 아무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며칠 후,

정리된 이랑마다 팻말이 꽂혔다.

1 중대장, 3 중대장, 1대대 작전과장 같은 직책이 쓰여있다.

"우리 보고 하라고?"


어쨌든,

텃밭과의 사투는 시작되었다.


거름도 안 준 공터에 만든 텃밭은 채소들을 키워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사모님이 하시던 두줄 빼고는 제대로 자라나는 작물이 몇 포기 안되었다.

게다가 돌아서자마자 풀이 올라왔다.


그런데 또 텃밭 관리 상황을 체크해서 회의시간에 보고 한다고 했다.


'1대대 3 중대장'이란 팻말이 꽂힌 이랑이 풀로 뒤덮인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아이를 업고 텃밭으로 향했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무성한 풀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를 업은 내가 손전등을 비추면 남편이 장갑 낀 손으로 풀을 움켜잡았다.

억새 빠진 잡초는 쉽게 뽑히지 않았다.

바짝 마른 땅덩이에 삽을 밀어 넣었다. 딱딱한 땅은 삽질도 거부했다.

콱,

남편이 발을 들어 삽을 밀어 넣었다.

팅,

돌이 걸려 쇳소리가 났다.

조용한 산 밑 아파트로 그 소리가 퍼져나갔다.

그 소리가 누군가의 귀에 들릴까,

조심스레 삽을 다시 들이밀었다.


"우리, 지금 뭐 하는 거야?"

가슴이 답답해진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 말을 못 들은 척 남편은 다시 한번 메마른 땅속으로 애써 삽을 들이밀었다.


업고 있던 아이가 지친 듯 찡얼 대기 시작했다.

"이쯤 하면 되겠지! 들어가자"

"아휴!"


그 와중에,

하늘 끝에 걸린 초승달과 별들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어둠 속에서 달과 별은 그들만의 하모니를 조용히 만들어내고 있었다.


얼마후,

시부모님께서 아들집에 놀러 오셨다.

텃밭에 대해 이야기하자, 두 분은 옷을 갈아입고 텃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무성해진 그곳에서

조용히 풀을 뽑아내셨다.



난 지금도 텃밭 가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농사꾼의 딸로 태어나 농사에 치여 사는 삶을 보아왔기도 하지만,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또렷이 살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