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그때의 기록 05
아이가 생기니 움직여야 할 일이 많아졌다.
예방접종이며 병원에 갈 일이 제일 걱정이었다.
퇴근후나 주말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0시에 나갔다 12시쯤 들어오는 버스는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진료가 늦어지면 아무리 서둘러도 떠나간 버스의 꽁무니만 바라봐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했다.
퇴근 시간에나 오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 남았다.
다른 가족들의 차를 얻어 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운전면허를 따야 했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면허를 딸 기회는 있었다.
결혼 전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 학원을 등록하려던 참이었다.
연애 중이었던 남편이 연수를 해준다는 말에 현혹돼 학원비를 데이트 비용으로 탕진했다.
그런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주차장 근처에서 두어 번 차를 타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시험을 보러 갔다.
결과는 뻔했다.
서툰 발에 엑셀과 브레이크가 뒤엉켰다. 겁먹은 차는 도로를 벗어났고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바퀴가 화단으로 올라섰다.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솟아났다.
놀란 시험관들이 총알같이 뛰어와 끌어내다시피 나를 차밖으로 잡아당겼다.
'실격'이라는 소리와 함께 무안함과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보다 그 찰나의 순간 엄습했던 공포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흔들리는 두 다리를 손으로 잡아가며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다.
그일 이후, 남아있던 두 번의 기회와 면허증은 끝내 시험장에 가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삼 년이 족히 지났다.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미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전년도에, 나 같은 사람을 막아보겠다는 취지로 시험이 강화되었다.
절차도 복잡해지고 비용 또한 서너 배가 늘어있었다.
병원에서 받는 신체검사에 통과하면, 6시간의 안전교육을 이수하고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학과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내에 하나 있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하루 두 시간씩, 오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의를 들어야 했다.
아이를 업고 맨 뒷자리에 엉덩이만 걸치고 강의를 듣는데,
부쩍 낯을 가리기 시작한 아이가 자꾸 찡얼거렸다.
뒤를 돌아보는 수강생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살짝 나와서 아이를 달래고 다시 강의를 들었다.
둘째 날, 아이는 더 힘들어했다.
아이의 불평만큼 눈치를 보는 시간도 늘어났고
내 엉덩이는 의자 끝가지 밀려 나왔다.
두세 번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야 했다.
강의가 끝나고 확인도장을 받는데,
강사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한 마디 했다.
"아줌마, 그렇게 대충 수업 들으면 낼부터 도장 안 찍어줄 거예요!"
"그게 아니라, 애가 너무 찡얼거려서 방해될까 봐요."
"그럼 아이를 두고 오던가."
"맡길 때가 없어서요. 죄송해요."
"암튼 내일부터는 똑바로 강의를 들어야 도장 찍어줍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를 추켜가며 뛰다시피 버스를 탄 후에도 화끈거림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렇잖아도 한 번의 기회뿐이 없다는 심정으로 밤늦게까지 공부 중이었다.
내가 더 간절했다.
다음날 강의가 시작되고, 삼십 분쯤 있으니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살짝 일어나 뒤에 나가 서있어도, 아이의 소리는 커져갔다.
수강생들이 뒤를 돌아봤다.
앞만 쳐다보는 척했다
달래 보지만 그치질 않았다.
문쪽으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 강사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의 말이 떠올랐다. 심술이 났다.
오히려 안으로 한 발 들어섰다.
아이의 소리가 더 켜졌다.
모르는 척 아이만 흔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도장을 찍어주며 말했다.
"낼부터 잠깐 아이를 달래고 오세요."
버스를 타러 오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도 모르게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일주일을 꼬박 예상문제집이 너덜 해지도록 공부를 했다. 두 번은 없다는 각오로.
통과였다.
다행히 기능시험은 학원에서 봤다.
같이 간 가족과 교대로 아이를 봐주며 교육을 받았다.
그것도 지나갔다.
문제는 도로 주행이었다
하루 두 시간씩 네 번쯤 연수를 받아야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온전히 아이를 부탁하기엔 너무 염치없고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시어머니께 사정을 했다.
오일만 아이를 봐주십사 하고.
어머님이 친정엄마인 시외할머니를 모시고 내려오셨다.
새벽부터 남편, 아이, 두 분의 아침을 챙기고 설거지까지 정신이 없었다.
떼쓰는 아이를 두고 나오는 것도 몹시 신경 쓰였다.
돌아와 점심, 청소, 빨래를 하고 나면 저녁시간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입술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혔다.
드디어 시험 날.
무조건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팔다리가 떨리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다행히 그것도 한 번에 끝낼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발급 전 안전교육만 완료하면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대구의 면허 시험장까지 가야만 했다.
오가는 것도, 아이를 맡기는 것도 큰 걱정거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랫집 후배한테 부탁하는 것 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아이도 낯을 가리지 않았고 운전도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임신 중인 사람에게, 하루 종일 나를 위해 운전하고 아이를 봐달라는 말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맛난 밥을 사주겠다는 말로 최소한의 염치를 챙기며 어렵게 부탁을 했다.
기저귀, 분유, 간식에 돗자리까지 챙겼다.
주차장 근처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와 후배 가족을 남겨두고 교육장으로 향했다.
강사의 농담 같은 교육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은 온통 주차장에 가 있었다.
맘 좋은 후배 덕분에 교육확인서에 도장을 받고 돌아서니 온몸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몸살로 사흘을 고생했다.
열흘쯤 뒤,
드디어 빳빳한 플라스틱 운전면허증을 받아 들었다.
운전학원에서 대충 찍은 사진엔 푸석한 얼굴의 여자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게 뭐라고 한 달이 넘도록 그 돈과 시간과 노력을 다했던 걸까.
그걸 받아 들었다고 쉽게 통행권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었다.
툭하면 시동이 꺼졌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길을 잘못 들어 낑낑대며 차를 돌려야 했고,
볼일 보는 시간보다 주차하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었다.
한동안 운전을 할 상황이 되면 손이 축축해졌다.
그럼에도 그 후로는,
통근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동동거리지 않아도 되었고,
차를 놓쳐
비싼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부탁과 사정사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