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휴양

팔자 좋은 여편네들 -그때의 기록 08

by 노을

6월 말부터 시작한 일주일간의 대대별 유격훈련이 끝나면,

부대로 복귀해 재정비를 하고 하계 해양훈련을 갔다.


해양훈련은 포항의 화진 해수욕장에서 닷새 동안 진행됐다.

기본적인 훈련 외에 중대별 족구 시합이나 수영대회 등 훈련과 휴양의 중간쯤 되는 일정이 포함됐다.


유격훈련으로 고생한 사병들에게는 보상 같은 시간이다.



문제는 그것이 남자들만의 일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월요일에 대대가 출발해서 바닷가에 막사와 텐트가 쳐지면,

수요일쯤 가족들이 뒤따라가서

이틀간 남편들과 함께하다 금요일에 복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인 가족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휴양이 될 리 만무했다.


그래서 우리는

해양훈련을

전투휴양이라 불렀다.


출발 이주 전쯤,

대대장 관사에 모여 밥을 먹고 난 후였다. 자연스레 하계휴양의 참가 여부를 물으셨다.


"다들 가는 거지?"

대대장 사모님이 물었다.

"가야지요."

과장 사모님이 대답했다.


선뜻 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난히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를 데리고, 텐트에서 이틀이나 자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 것만 해도 한 짐인데,

소대장과 계원들 먹일 음식을 챙겨야 했다.

밥솥에 불판, 식기까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렇다고 안 간다는 소리도 할 수가 없다.

지난해도 출산으로 열외가 됐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어려서 힘들 것 같다는 말은 꺼낼 수가 없다.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던 그 순간,


"전 못 갈 것 같아요."

2 중대장 가족의 목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애들 아빠가 힘들면 안 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녀의 용감한 답변에 과장 사모님과 내 눈길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자기 남편이 그래?

그러라 했으면 안 가면 되지.

2 중대장님 대단하시네."

그리고 말을 끊듯 덧붙였다.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 다들 가봐."


돌아오는 길에 과장 사모님은 그런 말을 왜 했냐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부터 그녀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친정이 부유하고 그 지역 유지라고 했다.

그 당시 흔치 않던 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윗분보다 좋은 차를 타는 것조차 눈치 보이던 시절이다.


부러움은 때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내 귀에 이런저런 말들이 들어왔을 정도면 이미 많은 말들이 돌고 있을 터였다.


그날 이후 그녀를 대하는 사모님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결국 그 집의 차는 바뀌었고,

그녀는 친정에 머물며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졌다.




삼겹살 다섯 근과 주물럭 다섯 근을 준비했다.

압력솥과 휴대용 가스버너까지 행보관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버스에 실었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령부 휴양소인 화진 해수욕장은

소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적하고 깨끗한,

모래사장이 유난히 하얗게 반짝이는 눈부신 해변이었다.

아빠를 보자,

말문이 트인 아들이

'아빠'를 외치며 두 팔을 벌리고 버둥거렸다.

그 바람에 유모차가 쓰러질 듯 흔들거렸다. 뛰어온 아빠가 번쩍 아이를 들어 올렸다.

움찔했던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소나무 사이

대대장님 텐트와 가까운 곳에

우리의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짐을 정리하고 서둘러 저녁을 준비했다.

아이는 물이 담긴 대야에서 첨벙거리고 있었다.


소대장들과 계원 대여섯 명이

삼겹살과 주물럭으로 저녁을 먹었다.

사병들을 관리해야 하기에 맥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식사소리로 텐트들이 어수선했다.


떠들썩한 식사가 끝나고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뒷정리를 하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피곤이 몰려왔다.


잠자리는 너무 불편했다.

잠자리 때문인지, 더위 탓인지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달래 보지만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의 흐느낌과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옆 텐트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12시가 넘도록 잠 못 드는 시간이 이어졌다.


끝내 남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만 좀 울라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가 텐트 바닥에 뒹굴었다.

남편의 손이 아이를 밀친 것이다.


놀랄 새도 없이 아이를 안아 올렸다.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에 휩싸여

나도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 미쳤나 봐 "

남편의 등짝을 서너 차례 내리쳤다.

찰싹찰싹 소리와 함께 손가락까지 찌릿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편의 당황한 표정과 마주했다.


아이를 들쳐업었다.

"당신이 아빠야?"

그 말을 텐트에 남긴 채 무작정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갔다.


달빛에 비친 논과 밭 사이 어슴프레 좁은 길이 보였다.

미처 여물지 못한 벼이삭이 바람에 스치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아이의 애처로운 흐느낌이 잦아들수록 후덥지근한 바람의 흔들림은 더 큰 소리로 일렁였다.


지칠 대로 지친 아이가

땀과 눈물로 젖어 축축한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었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눈물이 흘렀다.

아이의 흐느낌이

전염된 듯

내 어깨도 한참을 들썩거렸다.


삼십 분쯤 그 길을 오락가락하고 있으니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줘! 당신은 자격 없어."

"잘못했어! 미안해. 내가 미쳤었나 봐."

"돌도 안된 아이를! 말이 되냐?"

"정말 잘못했어! 정말이야.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글쎄, 용서가 될까?"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해는 어김없이 떠올랐다.

어제보다 더 눈부시게.


남편들이 출근을 하고 텐트에 가족들만 남겨졌다.


"괜찮아? 큰 소리 나던데"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잠도 못 주무시고."

"결국, 터졌구나 했지."

"아이가 하도 울어서..."

"애를 때리는 소리가 나길래 많이 참았다 했어."

"그게 아니라 남편이 아이를 밀쳐서...

남편 등을 때린 거예요."

"난, 자기가 아이를 때렸나 했네."



그날 나는

남편한테도

사모님과 가족들 한테도

입을 다물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새벽에 걸었던 그 길을 몇 번이고 오가며

오늘이 빨리 가기를,

하루가 어서 가기를 기도했다.



집에 돌아온 지 열흘쯤,

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입덧이었다. 임신 6주 차였다.


그 밤,

어두운 그 길을


우리는

둘이 아닌

셋이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