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 그때의 기록 07
얼마 전 뉴스에서 요즘 젊은 세대의 돌잔치가 결혼식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보도를 봤다.
천만 원이 넘는 화려한 돌잔치 화면과, 유명 연예인의 정성스럽고 소박한 돌사진이 교차됐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듯한 시대다.
과시로 포장된 타인의 삶을 너무 많이 보다 보면,
오히려 드러내지 않음을 선택한 쪽이 소신 있어 보이기도 한다.
문득 아이들의 돌잔치가 떠 올랐다.
경상도 하양.
1998년 8월 중순, 13평 아파트에서 무더위와 함께 치른 돌잔치는
잊히지 않는 기억 중 하나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뷔페나 식당을 대여해 돌잔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결국 집에서 손님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많은 손님을 한꺼번에 부를 수도 없었다.
그 주 목요일,
소대장들과 계원 대여섯 명을 초대했다.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회식 같은 접대였다.
두대의 선풍기로 식혀야 하는 여름날이었다.
된장찌개와 김치, 파절이, 쌈 정도면 충분했다.
짬밥에 질린 그들은
삼겹살과 술만 있어도 진수성찬이라 여기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전투복을 벗어던지고 국방색 반팔 내의 차림이었다.
치지직.
삼겹살 냄새와 함께 땀이 쏟아졌다.
시원한 소맥 한 잔으로 흐르는 땀을 씻어냈다.
늘어난 빈병만큼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자
땀을 닦는 것도 잊은 채 속마음을 털어냈다.
평소 업무할 때 호랑이 같던 남편은 그날만큼은 그들의 형이었다.
그간의 어려움과 섭섭함을 털어내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그 자리에는
정신없는 남편과 즐비한 술병,
불판 위의 타버린 삼겹살 조각과 널브러진 그릇,
그리고 땀을 닦던 수건 몇 개가 내 몫으로 남았다.
토요일에 시댁식구들이 오셨다.
부모님과 시동생내외와 조카, 막내시동생까지.
유난히 덩치들이 커서
소파도 없는 거실이 꽉 찼다.
전날부터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면 더 커지는 목소리를 나만 신경 쓰는 듯했지만
모두 즐거워하니 그걸로 되었다.
밥상 두 개를 붙여 하얀 전지를 깔고 차린 돌 상에서 아이는 연필을 잡았다.
아이를 위한 소원을 빌기도 전에
서둘러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아침밥에 상까지 차리느라
화장은커녕 세수를 했는지도 모를 몰골은 가관이었다.
밥을 차리려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식탁이 없다.
전 날 잠자리가 부족해 계단에 내놓았던 식탁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수소문 끝에 그 식탁은 다음날 오 층에서 찾을 수 있었다.
멀쩡한 식탁이 버려진 줄 알았다며
총각 소대장 둘이 멋쩍은 얼굴로 다시 들고 내려왔다.
시댁식구들이 가신 일요일 저녁,
친한 후배 세 가족을 마지막으로 초대했다.
후배의 개구쟁이 아들이 접시를 깨트려 야단을 맞았지만,
금세 아이들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상 두 개가 펼쳐지고
또다시 음식이 차려졌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선풍기 소리조차 삼킬 즈음
아이가 비명 같은 울음을 터트렸다.
모두의 눈이 아이를 향했고
잠깐의 침묵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크게 퍼져왔다.
비틀 거리는 걸음걸이로
좁은 방을 비집고 아빠한테 가려다 선풍기 사이로 손가락이 들어간 것이다.
빨간 피가
뚝, 하고 방바닥에 떨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를 들쳐 안고 응급실로 향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 때문에 자꾸 시동이 꺼졌다.
다행히 뼈는 상하지는 않았다.
두세 바늘 꿰매고 상처를 치료했다.
눈물로 범벅된 아이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울다 지친 아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서툰 운전인데
자꾸만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뭘 한 거지?
술과 땀으로 축하의 말이 오가던
사나흘의 돌잔치 중에
아이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엄마 바쁘니까 놀고 있어.
치워야 하니까 기다려.
힘드니까 얌전히 있어.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신경 쓰지 못했다.
누구를 위한 잔치였던가.
그 시간,
정작 주인공인 아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흰 붕대가 칭칭 감긴 아이의 손가락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찔러댔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
둘째 아이의 돌은 시댁 식구들만 함께 했다.
예쁜 자줏빛 원피스를 사 입혔다.
살짝 입술을 바르고
아이를 안은 채 사진을 찍었다.
그 옆에는 큰아이가
보조개를 만들며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