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그때의 기록 09
금요일 오전.
부지런히 아이를 업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발걸음이 무겁다.
옆대대 과장 사모님 댁에서 구역예배를 하는 날이다.
목사님과 눈을 맞춘 아이가 앵 소리를 냈다.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운 탓인지 유난히 낯을 많이 가렸다.
예배 도중 목사님의 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이의 찡얼거리는 소리도 함께 커져서 말씀이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구역 예배가 끝나면 식사를 대접하거나 다과를 준비했다.
목사님이 가시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데 요즘 진우 엄마, 왜 주말 예배 안 나와?"
"요즘 부쩍 낯도 많이 가리고 때를 써서 민폐인 거 같아서요.
"그럴수록 기도를 많이 해야지. 아이를 위해서도 그렇고."
잠깐의 침묵 뒤로 옆 대대 과장 사모님이 말을 잇는다.
"그래, 힘들수록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
그러니까 시어머니한테 시집살이를 그렇게 당하는 거야!"
"네? 무슨...?"
"자기네 시어머니 보통이 아니라며?"
머리에서 띵하고 쇳소리가 났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힘들고 속상할 때 속이야기를 하고 위로받으며 함께 했었다.
처음으로 정을 주고,
마음을 열었던 사람에게 믿고 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여기서, 이렇게 듣게 된 것이다.
어떤 말들이 어떻게 보태져 돌고 돌았을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꾸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았다.
남편 역시 종교적 신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이 출장에서 복귀 중,
고가도로 교각의 철근이 떨어져
지프차의 안테나를 치고 뒷 차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뒷자리의 남편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때 함께 있던 참모님이
목숨을 살린 건 하나님 뜻이라며 교회에 나올 것을 강권하셨다.
거절할 방법도, 구실도 찾지 못해 얼떨결에 교회에 가게 되었다.
첫 예배를 보는데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길어진 예배에 지루해하던 남편은 옳거니 하며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목사님의 말씀은커녕 찬송가 소리도 낯설고 어색했다.
혼자 도망간 남편이 얄미웠다.
두 번쯤 나가니 구역예배에 오라고 했다.
얼떨결에 신방을 했고,
금요일마다 예배에 갈 일을 신경 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내 뒷이야기가 들려왔다.
구역예배도 드리면서,
남편은 예배도 못 보게 애만 보게 하고
나는 공주같이 앉아있는다는 말이었다.
그렇잖아도 일요일 아침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소리를 까지 들으며 굳이 가고 싶지 않았다.
주말마다 이유를 만들며 이삼 주쯤 교회에 가지 않고 있던 그 무렵,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다음 주 구역 예배는 내 차례였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장만했다.
우리 집에서 드리는 첫 예배였다.
예배가 어떻게 끝났는지,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 내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낼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목사님이 먼저 돌아가셨다.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접하는 거라 정성을 다하긴 했는데,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소리야?"
구역장님이 물었다.
"죄송한데요.
이제 구역예배에 못 갈 거 같아요.
애도 부쩍 낯을 가리고 예배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요."
"괜찮아! 다 그런 거지"
다들 말을 거들었다.
"제가 맘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여서요.
더는 어려울 것 같아요. 죄송해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최대한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은 구역장님이
왜 그러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다시 물었다.
"남의 옷을 입은 듯, 남의 자리에 앉은 듯 너무 불편했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종교는 이런 게 아니에요.
힘들고 어려울 때 감싸주고 보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남의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이든 믿음이든
저한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몇 번이고 되뇌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울컥 목이 메었다.
"초신자한테 신경 쓰지 못하고 상처를 줘서 미안하네.
다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모두가 돌아갔다.
'후' 하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가슴을 누르던 돌덩이가 내려간 느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이야기가 또 얼마나 어떻게 보태져서
돌아다니게 될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후로도,
전도와 설득으로 교회로 인도하려는 지인들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말했다.
"나처럼 안 믿는 사람도 있어야
하나님도
믿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