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그때의 기록13
다음 달이면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된다.
어느새 두 아이가 그때의 우리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그냥 넘기기엔 못내 아쉬워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스물다섯 해 전, 그때처럼.
결혼 5주년이 다가오는 봄이었다.
그 사이 네 살, 두 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어렵게 낸 휴가는 시댁의 대소사를 치르기에도 부족했고,
특공부대다운 많은 훈련과 남편의 부재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만으로 숨이 찼다.
그래도 이번만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비교적 훈련이 없는 삼월이라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왕이면 신혼 여행지였던 제주로.
둘이 찍었던 사진을 이번엔 넷이 남기고 싶었다.
문제는 경비였다.
카드도 없었다. IMF로 월급은 동결됐고, 며느리 노릇에 두 아이를 챙기는 것도 버거웠다.
숙소는 군인 호텔을 이용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항공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통장의 잔고로는 무리였다.
며칠 뒤 남편이 말했다.
"알아보니 대구 공항에 군 수송기가 있다는데,
화물이랑 휴가 장병을 태우고 빈자리가 있으면 가족들도 이용이 가능하대."
"그래? 얼만데?"
"보험료 육천 원 정도?"
"진짜?"
"응, 대신 자리는 확실하지 않고."
육천 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신청해야지. 하루라도 빨리."
몇 차례나 남편을 재촉했다.
그리고 탑승이 확정됐다.
아이들과 제주라니 그것도 결혼기념일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몸은 이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앞을 거닐고 있었다.
신혼여행 후, 잡동사니를 넣어두었던 여행가방을 꺼냈다.
폭이 좁고 가로로 넓은, 바퀴만 달린
결혼 전날 함으로 메고 왔던 그 가방이었다.
색이 조금 바래 있었다.
그러면 어떻냐!
이 옷을 입힐까, 저 모자를 챙겨야 하나?
방바닥 가득 옷을 펼쳐놓고, 그 위에서 이리저리 손과 마음이 분주했다.
봄바람이 따스했다.
하늘에 흩어진 구름이 천천히 흘렀다.
꽃들도 저마다 봉우리를 터트리며 봄빛을 올리고 있었다.
공항 주차장은 이미 북적였다.
수많은 차들이 어디론가 날아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한껏 들뜬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며 청사로 향했다.
그런데 남편이 차를 돌렸다.
"이쪽이 아닌가..."
군 비행장은 민간 비행장 옆쪽에 따로 있었다.
널널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사병과 출장중인 사복 군인 몇 명이 앞서 걸었다.
아이들을 챙겨 뒤따라 가니 작은 창구에서 사병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신분증과 보험료를 내자, 저쪽으로 가라며 길을 안내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철조망 뒤로 군용 헬기 몇 대와 군용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 비행기는 어떤거야?"
"저거."
내 눈이 남편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낙하산을 맨 군인들이 뛰어내리던 얼룩무늬 비행기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저거? 저걸 탄다고?"
"응, 수송기라 했잖아"
"저게 수송기야? 나는 그냥 작은 비행기인 줄 알았지..."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햇빛을 받아 창문들이 반짝이는 비행기다운 비행기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시동이 걸렸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울려퍼졌다.
비행기를 보며 신나 하던 큰아이가 깜짝 놀라 남편한테 매달렸다.
소리만 요란한 것이 아니었다.
프로펠러에서 쏟아져 나오는 태풍 같은 바람에 몸을 숙여야 겨우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남편이 울먹이는 둘째를 끌어안고 앞서갔다.
모서리에 달린 끈을 잡아끌자 가방이 균형을 잃고 이리저리 뒤틀리며 끌려갔다.
진동은 온몸을 흔들었다.
아이가 인상을 쓰며 징징거렸지만,
그 소리조차 기계음에 흩어졌다.
우리 말고도 서너 가족이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캠핑용 의자를 이어놓은 듯한 좌석이 흔들다리처럼 일렁였다.
귀가 윙윙거리고 속까지 덜컹거리는 것 같았다.
휴지를 말아 아이의 귓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남편에게도 건넸다.
더욱 요란해진 소리와 함께 드디어 이륙을 시작했다.
기울어진 기체때문에 몸이 쏠리는 순간,
주르륵 가방 하나가 경사를 타고 굴러갔다.
눈에 익은 가방이다.
남편의 손을 떠난 가방이 옆사람들을 스치며 끝까지 미끄러지고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남편과 당황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자리를 잡자, 가방이 다시 굴러오기 시작했다.
모두의 눈이 그 가방에 꽂혔다.
옆사람을 스친 가방을 남편이 손을 뻗어 낚아챘다.
가방은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머리를 흔들던 소음조차 귓속에서 희미해졌다.
다시 귓속을 파고들던 소리가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광주에 도착했다.
짐과 몇몇 사람을 더 태우고
다시 한 시간은 더 날았다.
드디어 제주였다.
공항을 벗어날 때까지도 몸은 흔들리고 귀에서 여전히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야자수 사이로 스며드는 제주의 하늘은 역시 달랐다.
유채꽃에 파묻힌 아이들의 미소가 꽃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를 뛰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성산 일출봉의 계단을
가위바위보로 아빠를 이겼다며 신나서 올라가던 모습도,
그 밤 아픔에 힘겨워하던 아이의 울음소리도,
밤새 다리를 주무르던 그 시간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모든 것이 풍족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안고, 업고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삼박사일은
웃음과 미소로 채워졌다.
돌아오는 길.
사람들이 들어가는 공항청사, 그들의 세련된 캐리어를 보며 자꾸 어깨가 움츠러졌다.
출발 전에는 몰랐던 그 길의 차이를, 이제는 알게 됐기 때문일까.
그래도 갈때보다는 수월한 것 같았다.
아이들도 조금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지친 건지
그 와중에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이의 손을 꼭 쥐었다.
안쓰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천천히.
4년 전,
성인이 된 아이들과 다시 제주를 찾았다.
이번에는 창문이 반짝이는 비행기를 타고.
그날의 수송기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의 손을 꼭 쥐며 삼켰던 미안함까지도.
큰아이는 다른 기억은 희미하지만, 수송기를 탔던 순간만큼은 여전히 생각난다며 웃으며 말했다.
"아빠 덕에 그런 경험을 한 거지.
다른 애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