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 그때의 기록 12
훈련 중인 남편이 복귀하는 날이었다.
밖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큰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남편이 좋아하는 김밥을 말았다.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자는,
돌 지난 순둥이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얼추 정리를 하는데 아이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밖에서 놀고 있던 큰아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놀이터를 내다보았지만,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고 있는 둘째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진우야? 진우야?"
주변을 둘러봐도 아이가 없다.
"민재야, 진우 못 봤어? 같이 놀았잖아?"
"목욕탕..."
세 살 아이가 서툰 발음으로 대답했다.
"부대 목욕탕? 누구랑?"
"형아랑"
부대 안에 목욕탕이 있었다.
사병들과 간부들을 위한 시설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에게 개방되었다.
놀이터와 아파트 주변을 뛰어놀던 아이들이 몰려가 씻고 오기도 했다.
네 살, 겁이 많은 아이다.
큰아이들이 함께 데려간 걸까.
집으로 올라가 여전히 자고 있는 둘째를 확인하고 다시 내려왔다.
부대 쪽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발이 먼저 향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머리가 젖은 채 장난을 치며 떠들고 있었지만,
아이는 없었다.
"진우는? 같이 안 갔어?"
"안 갔는데요."
"부대 목욕탕에 없어?"
"없었는데...."
"진우 못 봤어?"
"아까 놀이터에서 봤는데요"
"그다음, 그다음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화조가 떠올랐다.
혹시 문이라도 열렸다면.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가 오백미터는 되는 듯 멀게만 느껴졌다.
커다란 철문이었다.
살짝 귀를 대어봤다.
비릿한 쇳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문을 흔들었다. 굳게 닫혀있었다.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혼자 형들을 따라가다 반대편으로 갔을까.
집으로 뛰어 올라와 차 키를 챙겼다.
둘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키를 돌렸다.
덜덜 소리만 요란할 뿐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정신을.
부대와 반대쪽으로 차를 몰았다.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저씨에게 물었다.
"노란 반팔에 회색 반바지 입은 아이 못 보셨어요?"
고개를 저었다.
떨리는 다리 때문에 자꾸 시동이 꺼졌다.
"진우야? 진우야?"
답이 없었다.
차를 돌려 아파트로 돌아왔다.
어수선한 소리에 아파트의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우가, 진우가 안 보여요! 보신 분 없으세요?
형아랑 목욕탕 갔다는데 없대요! "
말이 뒤 썩였다.
내 목소리 마저 귓가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떠돌았다.
"혹시 어느 집에서 놀고 있는데 티브이 소리 때문에 모르는 거 아냐?
집집마다 확인을 해보지."
옆대대 과장 사모님의 말에 잠시 숨이 돌아왔다.
그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현관으로 뛰어들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진우야? 혹시 우리 진우?"
아이는 없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와 주변이 어두워졌다.
가로등 불이 하나둘 켜졌다.
2층 인사과장 사모님이 흔들리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남편한테 전화했어.
남아있는 사병들이 부대안도 다시 찾아볼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아서
그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눈물만 흘러내렸다.
잠시 후, 주차장으로 흰색 승용차가 한 대가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후배 가족이 밝은 얼굴로
목욕 바구니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후배의 아이와 함께 아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뛰어가 아들을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막혀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아이를 붙잡은 채 엉덩이를 때리며 말했다.
"누가 말도 안 하고 어디 가라 했어? 응?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아이를 꾸짖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무너졌다.
아이도 내 목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말도 없이 아이를 시내 목욕탕에 데려갔던 후배도, 사모님과 가족들 누구도 말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눈물을 훔쳐냈다.
울고 있는 아이 손을 잡고 일어나 모두를 향해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연락을 받고 달려왔던 인사과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애들 동원해서 뒤질라 했는데,
하마터면 애 아빠한테 엄청 깨질 뻔했어요.
부대에 남아서 가족도 못 지켰다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찾아서 다행이에요."
"깜짝 놀랐네."
저마다 한 마디씩을 남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현관문을 열었다.
그제야 둘째가 인상을 찌푸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재빨리 둘째를 안아 들었다.
쭈뼛쭈뼛 큰아이가 다가와 팔을 벌렸다.
두 아이를 함께 끌어안았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한 흐느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그때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후배가 데려간 걸
내가 확인도 안 하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수선스럽게 아파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말도 없이 데려간 후배 가족이 잘못한 거 아니냐는 물음에
그 사모님이 말했단다.
'그 후배 가족은 싹싹하잖아!'라고.
그런데
내 뒷말을 한 그 사모님이
사건 당일
'집집마다 확인해 봐'라고 내게 말해 주었던 옆대대 작전과장 사모님이었다.
심장이 다시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날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