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06
이사 후 첫 방문이
분위기 파악의 마중물 같다면,
첫 반상회는
그곳에서 내가 겪을 '힘듦'의 정도를 파악하는 바로미터 같은 역할을 한다.
새로 이사 온 가족에 대한
관심의 말과 염려의 조언으로
부대나 가족들의 분위를 조금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생활의 난이도는 근무하는 지역이나 부대의 특수성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후방보다는 전방이, 일반부대보다는 특전사나 특공부대가, 보병보다는 포병이 여건도 좋지 않고 규율이 엄격하고 힘든 편이다.
물론 가족들 간의 예의로 여겨지는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규율도
남자들의 규율과 규제에 비례한다.
그래서 어디서 근무했느냐에 따라
남편들의 근무여건이 달라질 뿐 아니라, 가족들의 적응을 위한 노력도 상당히 달라진다.
거기에 윗분이 어떤 사람이냐는
그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 놓는다.
소위 그 '빡셈'의 정도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군생활을 하면서 젤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은 직속상관이다.
시험 없이 평정과 심사로 진급이 되는, 나라와 군에 대한 충성만이 인정받는 군의 특성상
그들에게 무조건 잘 보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
말 한마디, 행동하나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직속 대대장 사모님을 비롯한 대대모임이나 회식이
젤 힘들고 피하고 싶은 모임이다.
그에 비해, 같은 부대지만
같은 사무실은 아닌 통로 모임은
단추 하나쯤은 풀어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엄마 밥을 언제 먹었나도 기억 안 나는
먼 타지에서,
간혹 솜씨 좋은 사모님들이 다과대신 준비해 준 그 밥맛은 너무 훌륭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생전 먹지 않던 콩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시내에서 사 먹은 경상도의 콩국수는 걸쭉하고 입에 걸리는 게
엄마가 해준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몇 집을 찾아다녀도
원하는 콩국수를 먹지 못한 그 무렵,
한 사모님이 반상회 때 내준 콩국수는
입덧으로 잃었던 입맛을 살려내고
향수병을 치료해 준 선물 같은 맛이었다.
숨도 안 쉬고
염치 좋게 두 그릇이나 해치운 그 콩국수의 맛이라니!
지금까지도 그보다 맛있는 콩국수는 없었다.
군생활로 다져진,
새댁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음식 솜씨에 나만의 그리움이나 감성까지 보태진 그 맛은
꼭꼭 닫고 있던 맘의 문을 열어 젖히기에 충분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는 건 금물이다.
과장님 사모님들은 그들끼리,
동문들은 또 그들끼리의 만남과 모임에서,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나의 실수나 말들은 곱지 않게 포장되어
뜨거운 감자처럼 어디로 던져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군인가족 생활중 그 점이 제일 힘든 부분이었다.
처음엔 마음 열리는 데로, 느끼는 데로, 물어보는 데로 이야기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내 뒷말이 되고 내 남편의 약점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이 사람한테 이 말은 해도 되나?
이 말은 괜히 했나? 그 말까지는 하지 말걸!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같이 진급이 들어가기도 하고,
네가 되면 내가 안되기도 하는 경쟁자이기도 한.
고만고만한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다 보니,
좋은 말이 좋은 말로만 들리지 않고
내의도도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앞에서 엄청 친했는데 뒤에서 딴소리를 하는,
겉과 속이 달라지는 경험은
너무 큰 충격이고 상처였다.
더욱이 어느 순간
거기에 동화되어 가는 나를 느낄 때,
남들도 다 그렇다며
애써 핑계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머리는 또 한없이 무거워졌다.
산속에 달랑 한동 있는 아파트에서
새로운 가족의 이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시선을 모으기 충분했다.
어떤 때는 소문이 이삿짐보다 먼저 도착하기도 한다.
남편의 출신이나 기수, 나도 모르는 내 성격까지
이미 그곳에서 짐을 풀고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임신 사 개월 차
멜빵 치마를 입고 이사한 나는,
원피스 입고, 손도 까딱 안 하고 구경만 하는 공주 같은 사람이었다.
반상회는
남편들이 알려주지 않는 부대의 일정이나 상황을 알 수 있고,
엄마나 언니 같은 정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문이 먼저 짐을 풀고,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며,
문제를 지적하고 변명하기도 하는
청문회 같은 곳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맘카페 오프라인 버전이라 생각하면 비슷할지도 모른다.
다만,
누가 어디에 근무하는지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내가 누구인지 전체 공개되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