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07
"자기야, 주말에 손님 왔었나 봐?"
집들이 겸 시댁 식구들이 다녀간 그 주 반상회에서,
한 사모님이 묻는다.
"네, 집들이 겸"
"체격이 너무 좋으시더라. 누구야?"
아들 삼 형제 중에 남편이 젤 덩치가 작다.
시어머니는 임신 중에 학질이 걸려서 애가 저렇게 작다고 말씀하시지만,
174cm 정도에 80kg 정도였으니 표준 이상은 된다.
그런데 180cm 이상에 100kg이 넘는 시동생 둘에 비하면,
남편이 왜소해 보이긴 한다.
말이 좋아 체격이 좋은 거지 뚱뚱하다는 말이지 싶어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어머님이 남편보고 맨날 작다고 그래요."
"그럼 그 하얀 원피스 입은 사람은 시누야?"
"아니, 동서요."
"어머, 처녀인 줄 알았네. 머리도 그렇고."
다른 사모님도 한마디 한다.
"엄청 말랐더라. 시동생 반쪽도 안 되겠어."
동서는 늘씬하고 눈에 띄는 이쁜 얼굴이다.
정말 시동생의 반쪽도 안 됐다.
그날따라 유난히 샬랄라 한 하얀 투피스를 입고 왔다.
당시 유행하던 브릿지를 넣어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에 리본까지 묶고.
"머리도 그렇고 일 나가는 사람인 줄......
우린 상상도 못 하지 그런 머리. "
나도 상상도 못 했다.
그런 말.
조놈의 주둥아리!
주먹으로 입을 콱 막아 놓고 싶다.
"착하고 괜찮아요. 아직 어려서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렇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애써 삼키며 대답했다.
주차장에서 집에 들어온 그 짧은 시간,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그리도 자세히도 본 것인지.
그들은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나중에 동서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때 동서보고 술집여자 같다고 하더라고. 동서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런데 그날 난,
굳어지는 얼굴 근육을 단속하느라 애를 먹었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에 눈물로 이사했던 송추에서 우리 집은 2층이었다.
3층이랑 1층이 선임이었는데, 1층은 직보 기간이었다.
중령진급이 끝나고 전역 전에 예비역 중대장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그게 고시만큼이나 어려워 1년 이상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 한다.
이사 후 한 달 반쯤,
첫 반상회에서 1층 사모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좀 예민할 때고 낮에도 공부를 하니 조용히 좀 해주면 좋겠다고.
"방학기간이라... 조심시켜도 그런가 봐요. 죄송합니다."
"얼마 전 손님 왔다 가셨나 봐? 엄청 시끄럽던데."
"시댁식구들이 이사했다고 왔는데 워낙 목소리가 커서..."
그랬다. 이사할 때마다,
우리가 못 가니 시댁식구들이 집으로 왔다.
워낙 술도 좋아하고 목소리도 크다 보니 늘 신경이 쓰였다.
또 한소리 듣겠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내 딴에 그간 갈고닦은 애교를 쥐어짜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그러나 사모님은 쌓인 게 많으셨나 보다.
"자기 신랑 코도 엄청 골지?
옆에서 잠이나 제대로 자겠어?"
"그 소리까지 들려요?
술을 먹거나 피곤하면 코를 고는데.... 죄송해요! 조심시킬게요."
삼십 년이 넘은
새시도 안 맞아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문도 삐걱거리는 군인 아파트다.
세탁기 소리, 문 닫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방음은 그냥 알아서 하는 거다.
방학 동안 애들을 묶어 놀 수도 없고,
남편 코에 휴지를 박아 놓을 수도 없다.
그러나 또 "죄송합니다."
근데 정말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애들이 공놀이도 하더라!
지난주에 정말 올라가려다 참았네."
"네? 그건 아닌데요!
지난주 보일러가 고장 나 아이들 친정 보내고, 삼일동안 혼자 있었거든요.
저도 시끄러워 조용히 해달라고 했어요.
방음도 안되고 벽이 연결돼 있으니 3층 소리도 저희 소리로 들렸나 봐요."
사모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속사포처럼 튀어나간 말들은
주워 담을 수도 없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 애들이 그랬다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3층 사모님의 미간에도 주름이 생겼다.
그동안 몇 번이나 되뇐 죄송하단 말은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말댓구에 꼬박꼬박 지 할 말 다 하는 싸가지 없는 년이 이사를 왔다는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사모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다 나를 보면 시선을 돌렸다.
사모님과 친한 다른 사람들도 곁을 주지 않았다.
몇 년째 살고 있는 터줏대감 사모님의 심기를 건드린 죄로,
이번엔 정말 내 의지가 아닌 그들의 의지로
제대로 왕따가 됐다.
얼마 후 친한 엄마가 살던 민간인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남편의 코를 비트는 것도,
아이들을 단속시키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그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