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09
어버이날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월 중순쯤,
어머님이 입원을 하셨다.
당뇨가 있는 어머님은 일 년에 한두 번 입원을 하시곤 했다.
'아들이 군인이지 네가 군인이냐'라는 말로 며느리로서의 책임감을 잊지 않도록 해주시던 어머님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휴가를 내기도, 주말이라고 맘대로 이동을 하기도 쉽지 않던 때였다.
증평은 가깝기라도 했는데,
하양에선 위수지역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결국 혼자 영월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안동까지, 거기서 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또 영월까지.
옷가방을 메고, 칠 개월 부쩍 부른 배를 부여잡고 다섯 시간이나 가야 했다.
간호하시던 아버님도, 삼 개월 아기엄마인 동서네도 돌아가고 이틀간 어머님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는 버틸만했다.
그런데 점점 심해지는 태동과 부쩍 나온 배로 하루 종일 보조 침대에서 앉아있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이틀째 되니 허리가 아프고 배도 땡땡하게 뭉쳐왔다.
첫 아이를 잃었던 기억으로 불안이 몰려왔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렇게 고생하는데 조금이라도 섭섭해하시면 노력한 보람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어머님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다.
물을 떠가지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세상에 저런 며느리가 어딨어요?
요즘 며느리들 병문안도 안 오던데,
배가 저렇게 나와서 시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옆 침상 환자의 말이었다.
내 맘을 알아주는 게 고마워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
"그 정도도 안 해요? 뭘 한 게 있다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뭘."
말을 꺼냈던 환자가 겸연쩍은 얼굴로 말을 멈췄다.
나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어머님의 냉랭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칭찬은 아니라도 잘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실 줄 알았다.
휴게소 의자에 주저앉았다.
어머님 말씀처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몸으로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지.
한참을 그 자리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다음날 퇴원을 시키러 오신 아버님도 어머님의 짜증에 화가 나셨다.
가시방석에서 먹은 점심은 명치에 걸려 내려가질 않고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더 큰 일은 집에 와서 일어났다.
방금 퇴원하신 어머님이 갑자기 고추장을 담그신다고 하셨다.
허리는 끊어질 듯하고, 잠시라도 들어가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결국,
굽어지지 않는 배를 틀어가며 항아리를 닦고 종종 거리며 심부름을 해야 했다.
아이가 자꾸 발길질을 해댔다.
아랫배가 뻐근하게 뭉쳐왔다.
지금 같으면 변죽 좋게
아프시다더니 뭔 고추장을 담그시냐고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땐
어머님의 눈빛도, 말 한마디도 쉽게 넘기지 못한 채 눈치만 볼 뿐이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누가 들을까 송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최대한 소리를 누르며.
"나 너무 힘들어. 어머니가....."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불만 있으면 엄마한테 자기가 말해."
가슴에 쌓인 말들을 꺼내려는 순간
남편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뭐라고? 그게 말이야? 내가 어떻게 뭔 말을 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나보고 엄마한테 뭐라고 하라고?"
"내가 뭔 말을 해달랬어? 그냥 내가 힘이 들다고!"
"그럼 안 하면 되지. 아무것도 하지 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런 인간에게 잘 보이려고 내가 여태 이러고 있었다고!
벌컥벌컥 아무리 찬물을 들이켜도 가슴을 콱 막고 있는 주먹만 한 덩어리가 도무지 내려가질 않았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리고 기차에서
그간 힘들었던 일들, 섭섭했던 온갖 말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아물지 못한 채 묻어두었던 상처가
저릿저릿한 아픔으로 살아나 자꾸 나를 헤집으며 괴롭혔다.
이 사람을 믿고 살 수 있을까?
여기서 정리를 해야 한다.
일단 만나서 모든 걸 이야기하는 거다.
그간의 일, 가슴에 묻어둔 상처와 말들을.
그런데 그때도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너 같은 인간이랑 못살겠다고 이야기하리라.
혼자 애를 키우는 한이 있어도 더 이상은 참지 않으리라.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몇몇 승객이 자꾸 곁눈질을 했다.
임산부가 내내 훌쩍거리고 있으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기차가 하양역에 들어섰다.
시골 마을의 작은 기차역은 한가하다 못해 고즈넉했다.
퇴근시간인데도
길어진 해 덕분에
길가의 하늘 거리는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모를 꽃들도 저마다의 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무거운 몸을 끌고 역을 나섰다.
저 멀리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씩씩한 걸음걸이로 급하게 다가왔다.
그 남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씽긋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런데 그가
등뒤에 숨겨둔 꽃다발을 불쑥 내밀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 프리지어 한 다발이 들려있었다.
"미안해! 고생 많았지?"
꽃다발을 쥐어주며 두 손으로 내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이 따듯했다.
"됐어. 저리 치워."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애써 그의 눈을 외면해 보지만
프리지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더니 목구멍을 타고 어느새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얼어있던 심장을 조금씩 조끔씩 녹여내고 있었다.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눈을 흘겨 남편을 쳐다봤다.
따뜻한 그의 손이 내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때 그 프리지어 아니었으면 당신은 애들 얼굴도 못 봤어!"
그때가 생각나면 내가
큰소리치며 하는 말이다.
남편은 그 후로
자신이 불리해지면 꽃다발을 내밀곤 했다.
아마도 그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날을 기억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