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아픔으로

팔자 좋은 여편네들-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10

by 노을

첫 아이를 잃은 건 결혼 후 삼 개월 만인

96년 6월 말이었다.

임신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입덧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어가던 때였다.


시댁에서 아버님 생신을 치르고 났는데 배가 뻐근이 아파왔다.

초기이니 조심하라는 의사의 말도 신경 쓰이고,

살짝 겁이 나기도 해서 화장실로 뛰어갔는데 핏기가 비쳤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음 날부터 훈련인 남편은

전날 나만 시댁에 내려놓고 가버렸고

나는 또 혼자였다.

손위 시누에게 살짝 이야기를 했다.

"형님, 배가 땅기고 핏기가 비치는데......"


다음 날 시골의 작은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아이의 심장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분명 일 주 전 정기검사까지만 해도 들려왔던 그 소리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진듯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가락 끝까지 찌릿찌릿 저려왔다.


약을 투여하고 두 시간쯤 후에 수술을 해야 했다.

어머님과 작은 시누만 병원에 남았다.

점심을 드시고 오시라 했다.


혼자 병실에 누워

멍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았다.

남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랫배에 두 손을 올려 지그시 눌러보았다.

배보다

심장의 통증이 더 크게 느껴졌다.


얼마 후 간호사들이 보호자를 찾았다.

어머님과 시누이는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었다.

보호자도 없이 수술실로 옮겨졌다.


차가운 시트가 등에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수술대의 불이 켜졌다. 눈이 시렸다.

땀이 차올라 축축해진 손으로 다시 한번 배를 쓸어보았다.

그리고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내기도 전에 정신을 잃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비몽사몽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호자 아직도 안 온 거야?'


축 늘어진 나를 힘겹게 병실로 옮기는가 싶었는데,

덜 깬 마취 때문인지 또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머님과 시누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까와는 달라진 어머님과 시누이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새 옷이었다.

가슴이 냉기가 스며들었다. 마음이 시려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눈물이 흘렀다. 그러다 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웅성 거리는 소리에 깨어나니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주에 포도를 사줄걸!"

그의 말에 결국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병원에 갔다가 들른 시장의 포도가 너무 먹고 싶었다.

제철도 아닌 수입 포도는 한 송이에 육천 원쯤 했다.

너무 비쌌다.

전에도 가격만 물어보고 그냥 왔는데

그날 포도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퇴근한 신랑에게,

뭔 포도가 육천 원씩 하느냐고 너무 비싸서 먹겠느냐고 투덜거렸다.

다음날 남편은 시장이 문을 닫았다며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포도알이 몇 개 들어있는 '포도봉봉'이라는 음료였다.


나는 그것과 귤이 들어간'쌕쌕'이를 먹지 않는다.

교직시절 학부형들이 주로 사 온 음료였다.

지나치게 달기도 하고 질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필 그걸

입덧하는 마누라에게 포도라고 사 온 것이다.

참 눈치 없는 남자다.

그래도 그 정성이 어디냐.

그래서 웃고 말았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는가 보다.


"그러게! 그 애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포도 한 알을 못 먹이고 보냈네.

미안하게!"


삼십 분쯤 후,

남편은 잠깐 보고만 하고 왔다고 또 훌쩍 가버렸다.

결국, 시댁에서 남편이 올 때까지 몸도 맘도 불편한 몸조리를 해야 했다.


이틀쯤은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님이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고

자다 울다하며 지냈다.

삼일쯤 되니 먹은 그릇을 어머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담가 둘 수가 없었다.

급하게 출근하시느라 담가논 설거지와 집안정리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냥 두라고 하셔도 눈치가 보였다.

이래저래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 토요일,

드디어 남편이 왔다.


토요일까지 근무하던 때였다.

하루만 묶는 게 아쉬웠는지,

'하루 더 자고 새벽에 가라'는 어머님 말씀에

그럴까 하고 답을 했다.


'난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열흘도 넘었다고.

이 눈치 없는 인간아!'


안개가 짙은 월요일 새벽, 드디어 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일차로인 길이 밀리기 시작했다. 추월도 쉽지 않았다.

남편이 자꾸 시계를 쳐다봤다.


"안 되겠다.

아무래도 택시 타고 집에 가야 할 거 같아. 시내에서 내려줄게."


그러더니 정말 나를

정류장 근처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유월말인데,

몸속 깊이 한기가 느껴졌다.

옷깃을 여몄다.

남아있던 기운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다리가 풀려 자꾸 주저앉을 것 같았다.



"택시! 택시!"


그렇게 난

택시에

혼자만의 아픔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는

또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