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11
바스락바스락
쿵쾅쿵쾅
채 6시도 안 된 시간.
그는 여전히 하루를 빠르게 시작한다.
이젠 좀 여유 있게 늦잠도 자고 게으름도 피우면 좋겠는데.
오랜 군생활로 뼈에 각인된 그의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를 않는다.
그는 천생 군인이다.
나라에 충성하고 전우들과의 의리에 목숨 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친다.
부대에선 그렇다.
그는 대장부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맘만 맞으면 어느새 형님 동생이 되어 진심을 다한다.
밖에선 그렇다.
그는 다정한 아빠다.
쓰레기 정리며 집안일도 척척해주는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다.
평상시엔 그렇다.
그런데 비상시 그는
급하고 욱하고 불같고 걷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그 비상이라는 것이 예측이 불가한데 있다.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언제 어느 포인트에서 일어날지 모른다.
그럴 때 그는 너무 다른 사람이 된다.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세져도 너무 세진다.
그동안 잘했던 모든 것들을 깡그리 잊게 만들 정도로!
결혼한 지 두 달쯤 됐을 어느 날.
밤이 늦도록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 층 계단을 살금살금 걸어 내려오니 달빛이 밝다.
달빛에 비친 시골 군인 아파트의 회색벽이 을씨년스러웠다.
모퉁이를 돌자,
아파트 벽을 붙들고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자기야? **씨?"
"나, 아무래도 사고 친 거 같아!"
"무슨 말이야? 뭔 사고?"
손에 피가 묻어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더 이상 의사소통은 되질 않았다.
밤새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손에 묻은 피는 또 뭐지?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데, 정작 본인은 코를 골며 잠만 잘 잤다.
후회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시작됐다.
회식 후 2차로 간 단란주점에서 시비가 붙었단다.
옆 테이블 사람이 마이크를 놓지 않고 혼자만 노래를 해대니, 참지 못한 그가 나선 거였다.
다툼이 생겼고 집기가 파손되고 일이 켜졌다.
그 일로 윗분한테 엄청 깨졌고
헌병대에 불려 가 조사를 받고
업주에게 피해보상을 해줘야 했다.
그 당시 한 달 월급쯤 되는 돈이다.
대위를 단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있는 돈 탈탈 털어 식을 올렸으니 돈도 없었다.
어찌 합의금이라도 줄여볼 생각으로 업주를 찾아가 사정했지만,
망신을 당하고 자존심만 상했다며 뻘쭘해했다.
다음날 우체국에 근무하는 동생에게 돈을 융통해 봉투를 내밀었다.
"다란주점 마담에게 더 이상 자존심 상하게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어디서 났어?"
"그게 중요해? 대신 다시는 이런 일로 속상하게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러곤 화장실로 가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잔소리는커녕
그렇게 대범하게 넘어가 준 게 너무 미안해서 약속을 지키려 했다던 그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서 말했다.
"이 사람이 신혼 초엔 끽소리도 못하고 화장실서 울던 사람이야. 지금은 목소리가 나보다 더 커졌지만!"
"자랑이야? 왜 이렇게 됐을까? 삼십 년이 다되도록 이런저런 일로 담금질이 되고 단단해졌는데 안 변한 게 이상한 거 아냐?"
본전도 못 찾는 소리로 면박을 당했다.
그때의 내가 아니다.
갱년기가 시작되며 더욱 그렇다.
그도 그때의 그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세다.
성질이 죽으면 자기가 죽는 거라나!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불같은 성질은 나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의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으니.
그러나 그의 센 말과 행동은 수시로 내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결혼을 하고 그는 아주 효자가 되었다. 분명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데!
첫아이를 유산하고 얼마 후 임신을 했고 설이 다가왔다.
앞집 선임 중대장 가족이 이번 명절엔 가지 말라고,
생신 때 갔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냐고 조언을 했다.
습관성 유산이 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머리에 박혀있을 때이다.
조금만 배가 이상하면 화장실로 뛰어가 핏기가 비칠까 확인하곤 했다.
용기를 냈다.
"이번 명절엔 안 가면 안 되나?
아무래도 무서운데......"
"뭐가?"
"혹시라도 유산이 되거나 하면...... 앞집 가족이 안 가는 게 좋겠다고......"
"그래서 안 간다고? 명절에 간다고 다 유산되나?
그 여자는 지가 그렇게 산다고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떠들고 그래!
그래서 유산될 자식이면 난 필요 없어!"
거침없이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그게 말이야? 미친 거 아냐?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지금 같으면 악다구니를 쓰고 할 말 안 할 말 다했을 텐데,
그때는 눈물만 쏟아지고 심장이 터질 듯 아파올 뿐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코 골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발로 확 걷어차버리고 싶은 맘 굴뚝같았다.
밤새 그의 말이 심장을 파고들어 깊은 파편으로 박혔다.
그럼에도
모아 놓았던 연애편지만 북북 찢어 내던지는 걸로
아침에 밥도 안 챙기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걸로 걸로
화풀이를 대신했다.
출근 후 나와보니
난장판이었던 거실이,
편지를 모아놨던 파일이 말끔히 제자리에 있었다.
며칠 뒤,
난 결국 보따리를 쌌다.
그리고 시댁에 가서 열심히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했다.
요즘말로 "내팔내꼰" 이었다.
그 후부터 시댁 대소사에 안 간다는 말은 할 수도 없었고,
그러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가 못 가면 혼자라도 가서 며느리 노릇을 해야 했다.
그날
내가 시댁 가는 짐을 싸지 않고
끝내 싸워서 이겼다면
나의 삼십 년이 달라졌을까?
지금까지 거의 모든 걸 그에게 맞추며 살았다.
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의 이름 뒤에서
군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이 아닌 내조자의 삶으로
누군가의 딸이 아닌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그렇게 살았는데,
자기는 집에 자주 가지도 못하고 한 게 없어서 동생들과 부모님께 죄송하단다.
그럼 난?
나의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은?
그래서 또 화가 나고 섭섭하다.
오히려 요즘 더 자주 다투고 티격 댄다.
이제 난 그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도 그때의 그가 아닌데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투닥거린다.
지천명이 지난 지도 한참이다.
그런데
하늘의 이치는커녕 내 맘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그는 내게 너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