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13
전역 전 이사를 며칠 앞둔 날,
남편과 산책을 하고 있었다.
단지 내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가 뛰어가 아빠 목을 끌어안고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군복을 입고 있다.
채 다섯 시도 안된 시간이다.
"나 지금 엄청 신기한 걸 봤어!"
남편이 뭔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저것 봐!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왔어."
"그게 뭐?"
"안신기해?"
"뭔 소리야?"
"지금 다섯 시도 안 됐잖아. 근데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조기 퇴근의 날이니 그렇지. 그게 뭐가 이상해?"
"그러니까 이상하지.
당신은 우리 애들 입학식 졸업식에도 한 번 와본 적이 없잖아.
아! 둘째 고등학교 졸업식에 한번 왔다가 얼굴만 보고 갔나?
당신, 행사 때 애들이랑 찍은 사진도 하나 없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빠 없는 애들인 줄 알걸."
"별 싱거운 소리를! 그때는 다 그랬지."
"그니까. 당신은 행사 때는커녕 애 낳을 때도 못 왔는데 조기퇴근에 육아휴직도 준다며? 난 엄청 신기한데.
아깝다! 이젠 군인가족 할만한데 우린 끝이 났네."
"그러게."
남편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정일이 다가오자 목표는 오로지
남편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이미 시댁에서의 몸조리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일주일만 몸조리를 해주면 그냥 혼자 조심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새로운 산부인과가 개업을 했다.
시내에 하나 있는 산부인과는 남자의사였다. 병원도 지저분하고, 선생님의 까만 가운 끝자락이 갈 때마다 눈에 걸려 영 내키지 않는 참이었다.
새 병원은 여의사에 친절하고 깨끗했다.
단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스물아홉,
나이도 나와 동갑인
이제 첫 개원 한 의사라는 거였다.
내가 첫 산모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혹시 애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슬쩍 물어보니 간호사가 웃으며 걱정 말라한다.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남편 곁에서 애를 낳기에는 너무 먼 큰 병원보다 차 타고 3분 거리인 병원이 딱이라고 생각되었다.
예정일 하루 앞두고 엄마가 내려오신 그날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가면 아직 멀었다 하고,
아파 죽을 거 같다니 십 분 간격으로 진통을 하면 오라고 했다.
그렇게 꼬박 삼일이나 진통을 했다.
다행히 엄마도, 남편도 옆에 있어서 두려움은 덜어낼 수 있었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코 골고 자고 있는 남편이 얄미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곁에 있다는 걸로 위안하며 버텨냈다.
예정일이 이틀 지난 아침,
드디어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시작됐다.
그런데 7시쯤 나를 병원에 데려다 놓고, 보고만 하고 오겠다던 남편이 오지 않았다.
혼자 분만실로 들어갔다.
다리에 자꾸 쥐가 나서 도무지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간호사에 엄마까지 들어와 주무르고 애를 써도 다리가 자꾸 뒤틀렸다.
아이가 나오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쯤.
아이의 심전도 수치가 자꾸 떨어졌다.
의사는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급하게 전화를 해서 마취의를 찾았다.
그런데 그때 까지도 남편이 오지 않았다. 보호자를 찾던 의사는
아무래도 아이가 위험해 수술을 해야 될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진통 중인 나와,
팔이 빠지도록 내 다리를 주무르느라 정신이 없는 엄마를 향해.
아이의 심장박동은 점점 줄어들고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의사는 나를 흔들며,
한 번만 더 힘을 써보자고 이러다 큰일 난다며 힘을 주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위험했다.
무조건 힘을 줘야 한다.
아무리 다리가 뒤틀려도,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또다시 아이를 보낼 수는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진통보다 심장이 더 아파왔다.
다시 한번 마지막 있는 힘을 끌어 모았다.
말할 수 없는 고통뒤에
드디어 기적처럼 아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9시 18분.
빛 같은 아이가 태어났다.
나보다 더 흥분한 의사가 아이를 들어 울음소리를 들려줬다.
눈물이 흘렀다.
눈도 뜨지 못한 채 까무룩 의식이 희미해졌다.
정신을 차리니
엄마가 내 손을 꼭 잡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괜찮아?"
"작아서 그렇지 괜찮대. 너무 이뻐.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근데 넌? 괜찮아?"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를 바라보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직도 안 왔어? 여태 안 왔다고?"
그때까지도 남편은 없었다.
12시쯤 그가 나타났다.
꽃다발을 사들고 헐레벌떡.
"30분도 아니고 3분 거리야!
우리 아이가 죽을 뻔했다고!"
"미안해. 보내주질 않아서"
"뭐래? 아이 낳는데도 안 보내주는 게 말이 돼!"
회의 때문에 말도 못 하고 기다리다
병원에 전화를 하니 아이는 낳았다고 하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대대장한테 가보겠다고 보고를 하니,
"이미 아이를 낳았다며?
이제 가서 네가 할 게 없잖아?"
라며 끝내 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단다.
눈치만 보다 점심시간 부랴부랴 꽃다발만 사들고 왔다고.
그런데 그 대대장은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훈련기간 중 소대장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 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집에 갔다는 이야기 들어봤나? 훈련도 실전이야."
라는 말로 집에 보낸다는 남편의 보고를 묵살했다.
결국 훈련이 끝난 뒤에야 집에 보낼 수 있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군인은 3분 거리에서 아이를 낳아도 일과시간엔 나올 수 없다는 걸.
오로지 남편 옆에서 아이를 낳기 위한
그간의 나의 노력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이뻐?"
"어? 손가락 발가락 다 정상이야!"
"이쁘냐고?"
"애도 건강하대."
"안 이뻐?"
"아~니"
2.7kg으로 태어난 아이는 너무 작고 까맣고 털만 가득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어도 이쁘단 소리가 나오지 않았노라고.
거짓말 못하는 이 남자는 끝내
이쁘단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 살이 오르니 엄마 말대로 아이가 달라졌다.
이쁘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기가 너무 이뻐요!"
"애가 저 닮아서 인물이 좋죠?"
가게에 갔는데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슬쩍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이 집은 왜 이렇게 불친절 해! 딴 데 가자."
아이를 낳을 땐 오지도 않았던 그 남자는
두어 달 만에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