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15
그 해 추석은 유난히 빨랐다.
아이를 낳고 삼주쯤.
한 주도 안 남은 명절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남편은 명절 전날 당직근무였다.
한 달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젖병에 분유통, 기저귀보따리까지 싸들고 서너 번씩 차를 갈아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말 가고 싶지 않다고,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만
목구멍에 탁 걸린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 일로 남편과 언성을 높이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 보다 후 폭풍이 더 두려웠다.
당시,
그녀는 너무너무 쎘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전화를 했다.
"넌 손가락이 부러 졌니? 전화도 안 하냐!"는 불호령이 무서웠다.
때가 되면 손 끝이 떨리고 눈앞의 일들이 흐려졌다.
'전화해야 하는데..... 아, 뭔 말을 어떻게 하지!'
통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숨통을 막고 있던 무언가가 내려갔다.
멈췄던 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거 같았다.
남편이 못 가서 나도 못 갈 거 같다는 말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네가 군인이냐? 남편이 못하면 너라도 해야지. 맏며느리가!"라는 말로
내 입을 먼저 막으셨다.
남편이 알아서,
혼자 어떻게 보내냐며 내편이 돼줄 법도 한데.
결혼 후 효자가 된 남편은
보내지 않을 고민이 아니라,
나와 아이를 좀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명절을 이틀 앞두고 막내 시동생이 내려왔다.
형수와 삼칠일이 갓 지난 조카를 데려오라는 그녀의 특명을 받고.
남편은 아무래도 대중교통은 무리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밤에 우리를 태우고 안동까지 달렸다.
거기서 기다리던 둘째 시동생 차에 우리를 태우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고 말하듯이 되돌아가버렸다.
시댁까지는 안될 것 같으니 시동생한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아주 고마워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말을 삼켰다.
며느리에게 명절 준비는 늘 쉽지 않다. 하물며 결혼하고 두 번째 맞는
남편도 없는 차례 준비는 더욱.
음식이나 풍습도 친정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의 기준 또한 그때그때 달라져서 매번 물어야 했다.
일하는 것보다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뒷정리를 하고 있자니 드디어 남편이 왔다.
미안했는지 휴대용 버너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거기서 뭐 하고 있냐? 그걸 왜 네가 해!"
끝내 남편을 방으로 불러들이셨다.
꼭 저렇게까지 하셔야 되는 걸까.
그럴 때마다 내 안에 차곡차곡 돌덩이가 쌓이는 것 같았다.
방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아들 셋을 앉혀놓고 화투판을 벌이셨다.
그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러고 있는 저 남자는 또 뭔지.
동서 내외는 친정에 가고,
큰 시누 내외가 출발했다는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아이를 업고 슬며시 나와 백 미터쯤 떨어진 공중전화로 향했다.
발은 무겁고 그 거리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엄마! 언니들은 다 왔어? 난 올해도 못 갈 거 같은데..... "
목이 메어왔다.
"어.... 명절 잘 보내세요. 다음엔 나도 갈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둘러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한참을 전화부스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눈물을 훔쳐냈다.
다음 명절에 간다던 그 약속은 그 후로도 5년 동안 지키지 못했다.
명절에 휴가 내기도 쉽지 않고, 근무라도 끼면 시댁가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친정은 갈 수도, 갈 생각도 못했다.
시누 내외가 왔다.
과일을 깎는데,
방에서 들리는 어머님과 시누이의 대화가 정겨웠다.
눈이 파르르 떨렸다.
나도 모르게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자꾸 곁눈질을 했다.
그 모습조차 곱게 보이질 않았다.
네 시간이 넘는 동안 무거운 침묵만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입을 열면 또 싸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내겐 그럴만한 맘의 여유도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하지 못한 말들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이주쯤 지난 어느 날.
머리를 말리는데 정수리 부분이 희끗했다.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가르마를 갈랐다.
탁구공만큼 머리카락이 비어있다.
만져보니 맨질맨질했다.
'원형탈모'였다.
가슴에,
휑한 머리보다 더 큰 구멍이 뚫렸다.
뚫린 가슴으로 찬바람이 불어왔다.
손가락 끝까지 시렸다.
유난히 하루가 고단했다.
이제 한 달 반쯤 된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의 투정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다음 해 추석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어렵게 휴가를 낸 남편과 같이 갈 수 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괜찮을 줄 알았다.
"형님, 조심해야 할 거 같아요. 누군가 폭탄을 맞을 거 같은데.... "
"왜?"
"좀 싸하시던데."
동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방에서 그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이걸 여기에 쏟아 놓으면 어쩌라는 거야?"
제법 말도 하고 아자아장 걷기 시작하니 저지래가 늘고 있었다.
그 아이가 하필 할머니의 약 병을 쏟은 것이다.
손에서 그릇이 미끄러졌다.
뛰어가 눈치를 살피며 약을 주워 모으는데, 그녀의 손이 내 손등을 탁 내리쳤다.
"이 먼지 구덩이에 있는 걸 먹으라는 거냐?"
약을 쥐고 있던 손이 갈 곳을 잃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었다.
남편이 들어왔다.
"아이고, 왜 그랬어? 할머니한테 죄송하다고 해."
놀란 아이의 두 손을 빌듯이 모아 붙잡으며 그녀를 향했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 됐고, 데리고 나가!"
우리를 밀어내고 문을 닫아 버리셨다.
"함무니, 죄소해여."
아이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 몇 번이나 서툰 발음으로 잘못을 빌며 문을 두드렸다.
들은 척도 안 하셨다.
한참을 보고 있던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엄마! 너무 하는 거 아냐?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야? 내가 그 약 사주면 되잖아!"
여전히 들은 척도 안 하셨다.
화간 난 남편이
어찌할 바 몰라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짐 싸! 가자."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뭐 해? 짐 안 싸? 가자고!"
가방에 아이 옷을 쑤셔 넣었다.
"하지 마! 왜 자기까지 그래."
"가자고! 짐 싸라니까!"
남편이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내 목소리가 커졌다.
"정말이야? 짐 싸?"
"싸라고!"
"정말이지? 딴소리하지 마!"
"싸라니까!"
옷을 정리하고 젖병과 기저귀를 챙겼다.
아버님이 너까지 왜 이러냐며 그런 나를 바라보셨다.
"아버님, 죄송해요.
근데, 저도 너무 섭섭해요."
불같이 화를 내던 남편이 주춤 대며 나를 돌아보았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짐 안 실어?"
십만 원을 준비했던 봉투에, 지갑을 다 털어 열두 장을 더 넣었다.
장식장 위에 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동서, 어머님 약값이야. 모자라면 말해줘. 더 보내드릴 테니."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를 들쳐 안았다.
"안 가? 가자며? 나와!"
쭈뼛거리는 남편에게 한 번 더 소리를 지른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걱정하실 텐데...."
차의 속도를 30킬로도 안내며 남편이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짐 싸라며? 내가 몇 번을 물었잖아!
가자고 소리 지른 건 당신이야!
기어갈 거야? 속력 안내!"
그리고 난 입을 닫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속도를 안 내던 남편이 드디어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고개 돌려 바라본 유리창에 낯선 얼굴이 비쳤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잘하는 걸까?
울다 지친 아이가 품속에서 잠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온한 얼굴에 내 얼굴을 맞대었다. 보드랍고 따듯했다.
아이를 꼭 안아 보았다.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두어 달쯤 뒤 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녀가 좀 풀린 거 같으니 네가 전화를 하면 어떻겠냐고.
"아버님, 죄송해요.
이번엔 저도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얼마 후, 둘째 동서한테 전화가 왔다.
"은근히 형님 전화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이제 욕도 안 하세요. 풀리신 거 같아요."
"동서, 어머님이 풀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아직 안 풀렸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몇 달
내 마음도 살얼음 판이었다.
남편과 나는
날카로운 말과 눈빛으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그는 이미 돌아오는 차 안에서 풀려있었다.
나만,
뒤끝 긴 못된 며느리가 되어있었다.
또다시 돌아온 설 명절에
난 어김없이 보따리를 쌌다.
무거운 맘으로 시댁에 도착했는데,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왔니?" 하시더니 아이를 안고 들어가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고생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