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이가~~~
엄마랑 2박 3일 부산에 다녀왔다.
이번 길은 풍경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도착한 날부터 우리는 동생 집에 머물렀다.
낯선 도시의 밤이었지만
집 안의 공기는 익숙한 온도로 흘렀다.
부엌에서는 물이 끓는 소리가 났고,
식탁 위에는 그날그날의 시간이 차려졌다.
사위는 제주 은갈치를 조림으로 내어주었고,
동생은 아삭한 콩나물밥을 지었다.
엄마는 천천히, 그러나 남김없이 드셨다.
그 모습이 따스한 안부로 전달되었다.
이튿날, 연산동에 계시는 엄마의 친구를 찾아갔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간 길이었다.
또 다른 친구 한 분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저 얼굴을 마주했다.
그분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다.
말을 나누는 사이
얼굴이 발그스레 상기되었다.
“나 다 나은 것 같다.”
그 말은 병이 아니라
사람이 회복되는 순간 같았다.
두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또 다른 친구분을 만나러 만덕동으로 향했다.
집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이야기꽃은 오래도록 활짝 피었다.
양장점을 하시던 이력이 있는 친구는
손수 만든 두 장의 스카프를 선물로 건네셨다.
천은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한 땀 한 땀은 가볍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받으며
서로의 시간을 확인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동생과 함께 셋이서 향한 곳은
국제시장이었다.
엄마는 2층에서 한복을 짓고,
친구분은 1층에서 가방점을 하셨다고 한다.
최근 연락이 닿지 않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주변 가방점에 물어서
장소를 옮기고 규모도 작아진 가게를 찾아가는 길에,
친구의 막내아들이 엄마를 얼른 알아보았다.
삼 년 전 함께 만났던 친구.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고 했다.
2년 전에 떠났다고 했다.
우리는 가방을 세 개 골랐다.
동생 것, 내 것, 그리고 엄마 것.
계산을 하려는 순간
그는 엄마의 것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틀을 머물고 돌아오는 길,
부산은 여전히 부산이었지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더 깊이 알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어떤 만남은 약이 되고,
어떤 선물은 기억이 되고,
어떤 거절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이틀은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남기고 간 온도는
시간보다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