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휴무, 저기도 휴무.
나는 뼈가 빠지게 일하다가 왔는데 라멘 집은 왜 이리도 월요일 휴무인 데가 많은지.
그래도 번화가에 나온 덕분에 이 라멘 집이 안되면 저 라멘 집. 저 라멘 집이 안되면 또 다른 라멘 집을 찾아다닐 수 있다. 가게 당도하기 직전 길 찾느라고 보고 있던 폰화면에서 금일 영업 마감. 금일 휴업이라는 글자를 금세 찾아내고 이리저리 길을 꺾기를 여러 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라멘 가게에 들어선다. 생각보다 좁은 공간과 그것보다 더 작은 테이블이 놓인 라멘 가게. 가게를 가로질러 길게 놓여 있는 등받이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 좌석은 늘 의문이다. 보기에 분명 상당히 편해 보이고, 분명 디자인의 목적도 편안함일 텐데 테이블과의 거리가 항상 애매해져서 엉거주춤하게 불편하게 앉게 된다. 테이블마다 달린 주문용 태블릿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교자도 포함된 세트를 시킬까. 잠시 고민하다 라멘 하나와 하이볼 하나를 시킨다. 맥주를 먹고 싶었지만 병맥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시킨 하이볼.
오늘은 몇 안 되는 당직이 아닌 날이었다. 내 요 며칠 오프를 몰아서 나갔다지만 그래도 그 오프들은 이전의 내가 못 나가서 어쩔 수 없게 모이게 된 오프들이지 절대적 오프 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최근에 내가 자주 나갔다 하더라도 오프는 나에게 매우 희소하고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오늘, 월요일이라 그런지 더욱더 쏟아지는 일들을 당직을 서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불태우고 퇴근 시간이 30분 남은 시점. 새로운 일거리가 던져졌다. 전화벨이 울리고 새로운 일거리가 던져졌다는 걸 알게 된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아아 정말 재수가 없으려면 이렇게 재수가 없구나. 그렇게 2시간 30분을 오버타임을 했다.
저녁도 못 먹고 정신없이 오버타임 일을 하다가 고마운 동기들 손에 떠밀려 어둑해진 거리로 나섰다. 한여름이라서 쉽사리 해가 지지도 않는데 해가 져 있었다. 한 여름의 눅진한 공기가 바람이 통하지 않는 검은 근무복 사이를 억지로 헤집고 들어왔다. 습기를 잔뜩 머금었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공기는 아니었다. 여름이라고 완전히 거멓게 물든 지 않고 적당히 파아랗게 남색으로 물든 하늘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 여름에도 나는 좀처럼 해가 뜬 시간에 거리를 걸어 다닐 수가 없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지만 택시를 탈 순 없었다. 며칠 전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탔었다. 정신이 힘든 나에게 택시는 사치품이어서 터덜터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갔다. 그러다 문득 라멘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짭조름한 멘마가 올라간 라멘을 먹고 싶다. 그 길로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번화가로 나갔다.
라멘은 금세 내 앞에 나온다. 처음 도전한 가게였는데 맛이 나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얇은 면의 라멘이다. 꼬들한 얇은 면을 우물우물 씹어먹으면서 멍하니 맞은편 벽을 본다. 가게에는 쾅쾅대는 비트에 감성적인 멜로디를 감미로운 보컬이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야근에 지쳐 멍하니 벽을 보고 밥을 먹는데 나름 행복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 걸지 않는다. 주문조차도 테이블마다 비치된 태블릿을 손쉽게 계산했다. 종업원이 라멘을 서빙하긴 했지만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적당히 어두운 라멘 집에서 갈색 나무 벽을 멍하니 바라보며 밥을 먹는다. 옆자리는 세워진 작은 가벽으로 보이지 않는다. 온전히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만인지.
짭조름한 라멘을 먹다가 하이볼로 목을 축인다. 상큼한 레몬향과 싸구려 양주의 향이 퍼진다. 한 입 먹는 순간 술을 잘 모르는 나라도 이건 싸구려 양주라는 걸 안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지금 나에게 딱 맞는 술인 것 같다.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진 않았으나, 수당 없는 야근으로 정신력과 시간을 잃은 나에게는 저 싸구려 하이볼이 딱 내 수준 같이 느껴진다. 맛있고 맛이 없고를 떠나서 내 수준에 딱 맞는 술을 찾았다는 게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