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한 20대 대학생이 대학을 다니기엔 부적절한 도시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만 살다가 죽을 운명인지. 내 인생 내내 지방을 벗어나질 못 하고 있다. (사실 그렇게 오래 살진 않았다.)
자고로 대학은 서울에 가야지! 못 가면 고향 동네 근처에 대학 많으니 이 중 아무 데나 가겠지 뭐~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나. 정신 차려보니 아무 연고도 없는 또 다른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친분이 깊지 않은 누군가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불만스러웠던 점을 얘기해보라고 한다면
"불만이 끝도 없어서 삼일 밤낮을 떠들어 재끼고도 모자랄 것이며, 듣다가 나의 부정적인 면에 질린 당신이 마음속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를 재정립할 것이며, 나는 개박살 난 이미지로 사회적 체면과 인맥을 한 번에 잃게 될테니 말 못 하겠다"라고 정중히 사양하겠지만 그중 한 가지만 얘기해 보라고 하면 대학이 소재한 위치가 별로였다는 말을 꺼낼 것 같다.
대학가라고는 하나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근처에 아파트 단지도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상권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권이 없는 아쉬움을 떠나서 사람이 많은 동네에 살았던 나에게는 스산하기까지 했다. 밤늦게 학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누군가가 걱정하기라도 한다면 "이 동네는 사람 자체가 너무 없어서 칼로 나를 찌를만한 사람도 없다."라는 말을 농담으로 주고받을 정도였다.
일요일에는 그 몇 없는 가게들도 장사를 많이 쉬었다. 처음에는 하도 많은 가게들이 일요일에 쉬길래 여기는 교회 다니는 신자들이 원래 살던 동네보다 많나?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 주인이 교회 신자던 아니던 그냥 여기 가게 상황에서는 그냥 일요일에 쉬는 게 삶의 질과 경제적 이득을 따졌을 때 득이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 학년 때는 기숙사에 살았는데 일요일에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요리를 해 먹을 수도 없는데 근처에 끼니로 때울만한 것을 파는 가게조차 없었다!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점점 배달앱이 통용되면서 어찌어찌 배달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1학년 때는 배달앱이 그리 보편화된 상황이 아니어서 배달도 그다지 해결책이 되지 못했었다. 별수 없이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때웠었고 결과로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었었다.
학교에서 가장 근처의 번화가까지 물리적인 거리가 그렇게 멀진 않았지만 교통수단이 문제였다. 학교 앞 버스 배차 간격이 도시에서 온 사람을 견딜 수 없게 애매하게 긴 배차간격이었다. 버스를 타고 번화가까지 나가는 시간보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기를 몇 번. 한참을 휴대폰을 들여다봐도 오지 않는 버스를 몇 번 경험한 이후부터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항상 카카오맵을 켜서 버스가 몇 분 남았나 살펴보니 습관을 들이게 됐다. 그런데 그마저도 완벽히 의지하기 어려웠던 것이 동네가 대전의 끝자락이라서 기점에서 한두 정거장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카카오맵에서 버스 정보를 살펴도 보통은 "정보 없음"이라는 글자가 나를 반겼다. 카카오맵 버스 노선을 클릭해서 한참을 새로고침을 하다가 기점에서 출발한다며 갑자기 초록버스 아이콘이 뿅 하고 나타나는 순간 미리 챙겨놓았던 가방을 들고 총알같이 집에서 뛰쳐나가야 버스가 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가는 불상사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