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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Oct 11. 2021

열셋. 미니의 오징어 게임

두 번째 기적의 기록


잠자기 위해 불을 껐다. 잠시 후,

"위잉 위이이이잉"

번갯불 같은 속도로 소리 들린 귀를 후려 갈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휘이이잉"

반대쪽 귓구뇽에서 또 소리가 났다. 또 있는 힘껏 내 귀구뇽을 후려 갈렸다. 귀한 나의 피 한 방울과 오늘 밤 깊은 숙면을 위해 이 한 마리 모기의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내 모습이 보였다. 지금 시간 오전 4시 43분. 갑자기 요즘 전 세계로 난리가 난 <오징어 게임>이 생각났다. 옳거니 이거다.


얼마 전, 우연히 나의 글을 읽고 내 에세이의 팬이 된 친구가 전화가 왔다.

"야, 오늘 글도 재미있더라."

"잼있드나? 아, 다행이다. 내 초반에 글 쭉 쓰고 수정 없이 맞춤법만 확인하고 그냥 올리는데, 오늘 글은 진짜 두서없이 써서 걱정했거든. 재미있으면 다행이다."

"재미있긴 한데, '소다 소. 한우' 그게 맨 마지막에 나와서 그건 쫌..."


다른 작가처럼 시적이고 이쁜 주제. 그렇게 쓰고 싶지만, 창의적이지 못한 나의 한계이다. 그래서 나의 글, 특히 나의 주제는 정말 투박하기 그지없다. 주제를 어떻게 정해야 되는지, 솔직히 고민도 안 한다. 그냥 막 쓴다.  아직 죽지 않고 어딘가 숨어있을 이 모기가 이번의 주제를 안겨 줬다. 모기가 살렸다.





성인이 됨과 동시에 난 참 부지런히 살았다.

입학 전, 엄마와 약속했던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대학 생활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학기 중에 진행된 동아리 활동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주말 알바나 방학 때 바짝 벌어놔야만 했다. 입학 전, 태국어과에 입학하게 된 친구가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다며 제안했다. 양산에 있던 롯데제과 주식회사의 공장 알바. 아침잠이 무지 많았던 내가 해가 뜨기도 전인 꼭두새벽에 일어나 양산으로 가는 통근버스를 매일 아침 기다렸다. 시간은 5시 40분. 날카로운 찬 바람을 맞으며, 양산의 공장으로 향하는 통근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40분, 50분을 달렸을까. 커다란 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도착하니 출, 퇴근을 체크하기 위한 지문 등록이 있었다. 순차적으로 지문 등록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모여라고 한 장소로 갔다. 처음 배정된 곳은 박스를 포장하는 곳이었다. 제품이 다 담겨 나오는 박스의 질량이 맞는지 확인 후 큰 종이 박스에 옮겨 담고 테이핑을 하는 작업이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공장 작업이었지만, 재미있었다. 머리를  필요도 없고, 시키는 대로 하는 단순 반복 작업이 그저 재미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다른 곳으로 배정받아갔다.


이번엔 과자 공장이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칸쵸 과자의 불량을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커다란 기계에서 완성된 칸쵸들이 어마 무시하게 깔려 나오고 있었다. 완성된 칸쵸 과자 중 부서진 것이나 캐릭터 그림이 제대로 찍히지 않은 것들을 골라 폐기물로 옮겨 담는 작업이었다. 여태껏 봉지에 담겨 있던 칸쵸를 뜯어먹기만 해 봤다. 어마 무시하게 널브러져 나오고 있는 칸쵸의 불량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참아내며 불량을 찾았다. 불량이 나왔다. 옳거니 불량 칸쵸를 손에 넣었다. 내 손에 들어온 칸쵸는 불량 폐기물 봉다리가 아닌 내 입으로 들어갔다.


나의 왼쪽 입술 위에 꼭 벌레에 물린 것처럼 생긴 투명한 점이 하나 있다. 어려서부터 이 점, 성인이 될 때까지 제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분이 있으셨다고 한다. 이 점이 먹을 복을 가져다주는 점이라고 하신 분도 계셨다. 그래서였을까. 난 참 먹을 복이 많다. 하늘은 나에게 당뇨라는 벌칙을 내려 주셨다면, 먹을 복은 주시면 안 되는 거였다. 하필 수많은 아르바이트 자리 중에 일하게 된 자리가 과자 공장이다. 여기는 나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마음껏 과자를 먹게 해 주는, 일종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 집과 같은 곳이었다. 이 즐거움이, 추운 겨울 아침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설레며 통근버스를 기다리게 만들어준 희망이었다. 칸쵸의 불량을 골라내야 하는 나의 눈은 고통스러웠지만, 눈의 고통으로 골라진 불량들은 야무지게 내 혓바닥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 공장의 좋은 점이 또 하나 있었다. 근무지가 매일 바뀐다는 사실이다. 한 라인에서만 계속 일을 시켰다면, 나중에 칸쵸가 보기 싫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이 근무지가 매일 바뀌었다. 칸쵸의 맛이 질릴 틈도 없이 다른 과자 라인으로 옮겨 일을 하게 해 주었다. 역시 먹을 복 많은 내가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게 또 배려를 해 주신다. 이번엔 아이스크림 공장이다. 배정받은 위치로 반장님을 따라가며 양 옆에 있는 기계들을 둘러봤다. 어떤 아이스크림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성되어 나무 막대에 달랑달랑 달려 지나가던 아이스크림이 어떤 위치에 멈춰 아래로 퐁당 들어가더니 달콤한 초콜릿이 잔뜩 묻어 올라왔다. 우와,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는 것 같았다. 달달한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의 냄새. 내 입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내 입에 들어간 것 마냥 입안이 달달해졌다. 잠시 후, 배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내가 배정된 곳은 월드콘 라인. 아주 초반 라인에 다 같이 둘러서서 어마 무시하게 흘러가는 월드콘 동그라미 틀에 빠짐없이 월드콘 아이스크림이 담기게 될 콘 과자를 넣는 작업이었다. 장갑을 낀 손에 어마 무시하게 높게 쌓인 콘과자를 양손에 쥐어주시고 작업은 시작됐다. 눈을 굴리며 빈 공간을 찾아가며 손가락을 이용해 하나씩 구멍을 채워 넣는 일. 이 일도 재미가 있었다. 단순 반복 작업의 묘미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어떠한 고민도, 잡생각도 날 틈이 없었다. 잡념과 고민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독자 분이 계신다면, 한 번쯤 이런 단순 반복 작업을 해 보는 걸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로 잡념이 생길 틈이 없. 그러나 이 작업에서 나에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이 작업은 불량이란 게 없어 내 입에 들어갈 게 없었다는 것이다. 기계가 너무 빨리 돌아가 뭘 먹고 자시고 할 여력도 없었다. 그렇게 그 일이 또 지루해지기 시작할 무렵, 부서를 또 옮겨 갔다.


아, 이번 작업은 좀 하기 싫은 작업이다. 아까 그토록 행복해하며 지나갔던 아이스크림 초코 라인 밑에 쏟긴 초콜릿을 닦아내는 작업이었다. 일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바닥에 흥건한 초콜릿을 입에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작업 또한 길지 않을 것임을. 다음 라인이 어디로 또 배정이 될지 설레었다. 열심히 바닥에 흥건한 초콜릿을 닦고 또 닦았다. 관리자 반장 언니가 오더니 옆에서 열심히 같이 청소하고 있는 친구를 두고 나만 따라오라 신다. 따라갔다. 이번엔 초코파이 라인이다. 본래 모든 라인에는 여러 명이 배치가 되어 같이 작업을 했다. 그러나 초코파이 라인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일하면 된다 하셨다. 설명해 주셨다.


“기계 이제 켜 줄 건데, 기계 켜지면 반죽이 나올 거예요. 그럼 저 밑으로 반죽이 찍혀 나가고 저 앞쪽에서 마시멜로 찍혀 나오고 하거든요. 여기 반죽기계 옆에 앉아 있다가 한 번씩 모양 이상하게 찍히는 거 퍼서 다시 반죽기계에 넣어주면 되고요. 자주는 안 그런데 한 번씩 반죽 안 찍히고 마시멜로만 찍혀서 갈 때가 있어요. 그럼 얼른 내려가서 마시멜로 쓸어 담아서 폐기물 처리하면 돼요.”라고 알려 주시고는 기계를 켜 주시고 자리를 떠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이 반죽이 쏟아져 나왔다. 반죽 기계 옆에서 제대로 잘 찍혀 가는지 살펴보며 시간이 흘렀다. 이 작업은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올 정도로 수월했다. 참 나는 먹을 복만큼 일 복도 좋은가보다.


잠시 후, 폐기물을 처리하고 돌아가다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잠깐 들렀다. 나를 보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미니 니 진짜 일 편하게 하네. 내 힘들어 죽겠다.”

본인의 일에 비해 너무 편하게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서러웠나 보다. 나도 그 작업을 하고 온 터라, 오후가 되도록 그 일만 했다면 힘들 것 같았다. 뭐라 위로해줘야 될지 몰랐다.

“계속 그 일 해야 된다나?”

“아니 이제 끝나간다.”

“아고, 그나마 다행이네. 니도 쉬운 작업 걸릴 거니깐 걱정마라.”

그렇게 친구도 자리를 떠났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나의 작업은 너무나도 수월했다. ‘진짜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진짜 쉬운 일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난리가 났다. 반죽이 기계 위에 찍히지 않았다. 반죽이 찍히지 않은 곳에 마시멜로만 덩그러니 찍혀 지나가고 있었다. 헐레벌떡 내려가 나 홀로 찍혀 가고 있는 마시멜로로 뛰어갔다. 두 팔을 뻗어 수없이 찍혀있는 마시멜로를 내 품에 끌어 담았다. 그렇게 많은 마시멜로로 샤워를 해보긴 처음이었다. 그렇게 폐기물로 향하는 마시멜로는 어김없이 내 입을 한 번 거치고 들어갔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달콤했다. 이런 불량스러운 사건이 한 번쯤 일어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진행된 과자 공장 아르바이트는 학기 중 내가 마음 편히 동아리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 공장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면, 동아리 연습도 주기적으로 빠지고 아르바이트를 다녔어야 했던 게 분명하다. 공장 아르바이트비가 쏠쏠하긴 했지만, 학기 중에 들어가게 되는 여러 가지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좀 빠듯하긴 했다. 입학 후, 친해진 친구들의 술자리에 한 번씩 주머니가 달랑거리면, 알바 핑계, 동아리 핑계를 대며 빠지기도 했다. 노는 걸 무지 좋아했던 나지만, 친구들과 술 먹자고 엄마에게 용돈 달라며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점심시간, 친구들과 교내 식당을 갔다.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갑자기 식당 입구로 갔다.

“선배~ 저 밥 사주세요.”

우와, 세상에나. 밥 사달라는 이야기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도 있구나. 늘 돈이 쪼들렸던 나. 나도 밥 사달라고 해봐?

“선배 저도 밥 사주세요.”

라는 말이 목청 아래까지 올라왔지만, 목청을 넘기지 못했다. 참 뻔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인데, 왜 이 말이 이토록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선배가 사준 점심을 먹고 있는 친구 옆에 내 돈으로 산 밥상이 차려졌다. 선배도 참 그렇다. 신입생 후배가 같이 있으면, “니도 사줄게” 할 법도 한데, 매번 밥 얻어먹는 친구와 같이 먹는 나의 밥값은 항상 내가 결재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배들도 아주 어린 대학생이었다. 지금이야 예비역이라도 돈이 귀했을 터라며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밥 사달래야 사주는 선배도, 밥 사달라고 떼쓰지 못하는 나도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매번 밥을 얻어먹던 그 친구도 참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토록 원하던 동아리 댄스 연습시간이다.

여태 내가 추는 춤을 거울을 통해 본 적이 없었다. 녹화 테이프를 돌려보며 춤을 따고 늘 창문을 거울 삼아 내가 추는 춤을 보곤 했다. 처음이다. 연습실이란 곳에서 내가 추는 춤을 거울을 보며 추게 된 것이 말이다.

공식적으로 신입생들과 같이 춤 연습을 시작한 곡은 디바의 ‘Hey, Boy’라는 곡이었다. 매일 집에서 혼자 춤을 따다 누군가 가르쳐주는 춤을 배우는 게 어색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춤 연습을 진행한 지 몇 주후, 곧 주최될 축제 공연을 준비해야 되는 기간이 왔다. 춤을 가르쳐준 선배가 주축이 되어 공연 대형을 맞추게 되면서 메인 댄서로 추게 될 디바 메인 멤버를 정하게 되었다. 한구석에 모여 그 선배가 어떻게 대형을 맞출지 선배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인의 제일 가운데 자리는 예상했던 대로 3학년 유일한 여자 선배였던 인이 언니가 당첨됐다. 당시 2학년 여자 선배들은 이 곡을 연습하지 않았다. 나머지 두 메인 자리는 1학년 신입생들로 배정될 것이 뻔했다. 춤에는 자신 있었다. 그 두 자리 중에 한자리는 내 자리가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됐다. 두 자리 중 한 자리에 국어국문학과 동기가 배정됐다. 춤을 굉장히 파워풀하게 추던 동기였다. 왠지 인정이 되었다.

‘그래. 저 친구는 메인 자리 설만하지.’

나머지 한자리가 남았다. 괜히 설레었다. 선배가 이름을 불렀다.

어라, 내가 아니다.

나머지 한 자리도 국어국문학과였던 그 친구와 같은 과인 아이가 배정이 되었다.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형을 담당한 선배는 영문학과 선배였다. 같은 과 후배였다면 그럴 법도 한데, 같은 과 후배가 버젓이 있는데도 다른 과 동기를 배정했다. 춤을 굉장히 잘 추는 아이였나?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미모? 오케이. 미모로 뽑은 거면 인정하겠다. 나름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대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빠르게 인정하는 게 속 편하다. 그런가 보다. 내가 메인이 될 인물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내가 배정된 백댄서 자리에 섰다. 대형이 배정되어 연습을 마친 그날, 2학년 선배가 슬쩍 나에게 오더니,

“진짜 말도 안 된다. 난 당연히 니가 될 줄 알았는데, 진짜 이건 아니다.”

아,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실력 없는 건 아닌가 보다. 왠지 위로가 됐다.

공연이 끝나고 대형을 짰던 선배와 친해진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동기 중에 국어국문학과 여자 멤버가 2명이 있었다. 1명이 메인이 됐는데, 같은 과 친구가 메인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비교를 하고 사이가 틀어질까 봐 배려를 한 것이라고 했다. 이유를 듣고 보니, 너무나도 이해가 되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당시 나의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다.

 중학교 첫 연극 당시, 맡게 된 주인공 역을 뺏겨버렸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회장 역할을 담당하고 연출을 맡아해 보긴 했지만, 극 중 주인공 역을 맡아본 적은 없었다. 댄스동아리의 첫 공연의 메인 자리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분명 주인공이 되면 안 되는 인물인가 보다.


그렇게 ‘Hey, Boy’의 안무가 완성되어 갈 쯔음, 새로운 안무로 들어갔다.  

이번의 곡은 코요테의 ‘디스코 왕’이라는 곡이었다. 곧 있을 축제에 아주 걸맞은 곡이었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메인 자리의 섭섭함도 조금씩 잊혀갔다. 안무를 다 익힌 후, 디스코 왕의 대형 자리도 맞추게 되었다. 이 곡을 담당한 선배는 그 귀족 두바이 사람처럼 생긴 시커먼 선배가 배정해 주었다. 코요테의 여자 멤버인 신지의 자리는 당연히 3학년 선배인 인이 언니가 차지했다. 자연히 신입생들은 그 백댄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욕심이 올라왔다. 이왕이면, 같은 백댄서 자리라도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앞자리에 배정이 되었으면 했다. 배정이 끝났다. 아싸. 앞자리다. 뒤를 둘러보니, 디바의 메인을 차지한 친구들을 뒷자리로 배정시켰다. 뭔가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혜택을 느낄 수 있게 신경 써 준 것 같은 대형 자리를 보며 선배의 배려심이 느껴졌다. 메인 댄서들의 바로 옆자리로 배정된 내 자리에 자리 잡고 섰다. 디바의 메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두바이 선배가 알려준 대형대로 움직이며 안무 연습을 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갈 쯔음, 후반부 코요테의 신지가 혼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의 연습을 하게 되었다. 대형대로 온전히 연습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갔었다. 그 부분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 걸로 보였다. 드디어 결심했는지, 그 부분 바로 직전 대형대로 서라고 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직전 대형대로 서서 선배의 분부를 기다렸다. 신지의 독창 부분 바로 앞부분에는 남자 메인 선배들이 춤을 뽐내는 단독 안무 구간이었다. 그렇게 두 남자 메인의 단독 댄스가 끝나고

‘뒤를 돌아봐, 너무 빨리 걸어온 길’

이라며 신지가 혼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왔다. 두바이 선배가 아주 조심스레 말을 열었다. 남자들의 단독 안무를 하는 도중에 신지의 역할을 맡은 선배와 나의 위치를 바꿔 앉아라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어안이 벙벙했다. 왜? 내가 왜 메인을 맡은 언니 자리로 가라고 하는 거지? 좋다기보다는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일단 시키는 대로 바꿔 앉아 기다렸다. 신지의 단독 구간이 왔다. 신지 독창 부분에서 남자 메인 선배들이 단독 안무를 끝내고 앉음과 동시에 혼자 일어나 애드리브로 춤을 춰라고 시켰다. 이게 무슨 일인가? 버젓이 신지의 역할을 맡은 선배가 있는데 굳이 선배를 빼고 나를 세운다는 게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살짝 기분 좋음과 동시에 메인 자리를 맡았던 언니의 눈치가 너무 보여 좋아하는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애드리브라… 시키는 대로 잘할 자신은 있었지만, 애드리브로 춤을 추기에는 형편없던 나의 창의력으로 인해 머리가 하얀 백지가 되어 어떤 춤을 춰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이 깊어졌다.

“선배, 어떤 춤을 춰야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두바이 선배가 “그럼 이렇게 춰봐”라며 손을 하늘 위로 찌르며 일어난 후, 하늘로 뻗은 손을 머리부터 내 몸을 쓸어내리며 엄청난 골반 웨이브를 추는 춤을 가르쳐줬다. 그리고는 내가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된 이유를 곁들어 설명해줬다. 골반을 쓰는 재주와 웨이브의 실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이 점은 인정.

고1 축제 연극 당시, 자두의 ‘잘 가’ 춤을 추며 골반 웨이브로 교내 인기를 얻은 적이 있어, 내가 왜 이 장면의 메인이 되었는지 이해가 됐다. 신지의 메인 역할을 맡은 언니를 슬쩍 봤다. 언니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성격 좋은 선배라 천만다행이다.


본격적인 안무 연습이 들어가기 전, 동아리방에 가던 길에 동방에서 나오는 인이 언니와 마주쳤다. 오티 때, 춤추다 음악이 뚝 끊겨 그냥 내려갔던 그 무대의 보아 '더블'의 메인 댄서를 했던 선배였다.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붙잡았다. 깜짝 놀라며 토끼눈으로 쳐다보던 선배의 붙잡던 팔을 놓으며 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아 선배,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마프 신입생 김미니라고 합니다. 오티 때 공연 너무 잘 봤어요. 너무 반가워서 그만^^;;”

“아, 놀래라. 그래요. 이따 연습 때 봐요.”

3학년 유일한 여자 멤버였던 인이 언니와의 첫 대면은 이러했다. 이후, 아주 많이 친해진 후 언니가 얘기했다. 그때 진짜 깜짝 놀랐다고, 뭐 이런 아이가 있나 싶었는데 귀여웠다고 했다. 그 첫인상이 깊게 박힌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언니는 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아주 짧게 신지의 독무대를 즐기고 바로 언니와 자리 교체가 되었다. 이 일로 언니와 틀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도 메인 아닌 메인 자리를, 아주 잠시지만 차지하게 됐다.  



좋으면서도 눈치 보이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이 뒤 섞인 단독 메인 연습이 들어갔다. 단독으로 웨이브를 추는 7초가 지나고, 원래 메인이었던 인이 언니와 다시 자리를 바꾸기까지 30초. 나를 중심으로 두 남자 메인 선배들과 안무를 맞추는 장면이었다. 왼쪽 오른쪽 방향 바꿔 한 번씩 안무를 맞추고 다시 원래 백댄서였던 내 자리로 돌아가는 대형이었다. 내 몸이 인지하는 편한 방향은 오른쪽 먼저, 다음 왼쪽. 그리고 다시 백댄서로 들어가는 게 편한 대형이었다. 메인 댄스를 추고 편한 방향대로 오른쪽, 왼쪽 순으로 춤을 춘 후 내 자리로 돌아왔다. 연습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 순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벌어져있던 댄서들이 처음에는 여자 메인 방향으로 몰려들어 안무를 맞춘 후, 다시 대형이 벌어지는 안무였다.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나에게 모인 댄서들과 안무를 맞추는데, 내 쪽으로 붙은 오른쪽 메인 댄서 선배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의 오른쪽 대형에 메인 자리를 맡은 선배는 아주 무뚝뚝한 성격의 해병대 예비역 선배였다. 입학 후, 인사 외에 이야기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주 무뚝뚝한 선배였다. 그리고 잘 생겼다. 얼굴도 잘 생긴 데다 말 한번 섞지 않았던 선배 쪽으로 먼저 몸을 돌려 안무를 하는 게 뭔가 모르게 속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왼 편의 메인 선배는 그 두바이 선배였다. 성격도 호탕한 데다 나와 이야기도 많이 했던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던 선배, 첫 방향을 두바이 선배가 있는 왼쪽으로 얼른 옮겼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무뚝뚝함이 불편했는지, 그 잘생김이 불편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대학 축제기간이 되었다.

이 대학이라는 공간이 공부하는 공간인지 술판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신나는 기간이 왔다.

축제 메인 공연을 하기 전, 어학관에서 ‘Hey, Boy’의 대낮 공연이 먼저 있었다. 그 공연을 봤던 베트남어과 동기들이 공연 잘 봤는데, 통통한 뱃살이 귀여웠다고 했다. 아, 곧 있을 대학 메인 공연에서도 뱃살이 귀여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싫었다. 처음이다. 내 의지로 먹는 음식을 마다한 것이. 아마 코요테의 메인 자리에 내 자리가 없었다면, 이토록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잠시의 30초가 내 인생 처음, 내 의지력으로 먹을 것을 참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주었다.


동아리 축제 공연 날이 왔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졌다. 자유 의상으로 추게 된 ‘디스코왕’ 다들 배꼽이 보이는 의상을 권했지만, 얼마 전 통통한 배가 귀여웠다는 동기의 말에 배꼽티를 입고 싶지는 않았다. 기장이 살짝 짧은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던 단추를 매 잠겄다. 잠겨진 재킷을 본 여자 선배가 단추를 풀어라고 시켰다. “네”라며 단추를 풀었다. 공연 무대 올라가기 직전, 얼른 열려있던 단추를 채웠다. 정말 지독 시리 말 안 듣는 광녀이다.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었다. 축제 무대는 다른 무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초대된 가수들이 오를 무대라 무대의 크기며, 조명이며 할 것 없이 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웠다. 여태껏 올랐던 공연 무대 중에 가장 화려한 무대였다. 무대가 설치된 운동장 저 끝으로 빼곡히 모여 공연을 바라보고 있는 교내 학생들이 보였다. 긴장감과 동시에 희열감이 느껴졌다. 곧 잠시 메인이 될 코요테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최선을 다해 백댄서의 역할을 끝내고 남자 메인 선배들의 단독 안무가 시작되면서 인이 언니와 자리를 바꿔 앉아 대기했다. 아, 긴장이 너무 된다. 정말 모두 앉아 있는 무대에서 오로지 나만의 단독 무대 7초. 정말 잘하고 싶었다. 드디어 남자 선배들의 안무가 끝났다. 오른손 검지를 하늘을 쑤셔 넣듯 올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골반이 튕겨 나갈 정도로 돌리며 웨이브를 췄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기분이 째질 것 같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공연을 마무리 지었다. 다들 수고했다며 인사하며 거친 숨을 내 쉬며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관객석에서 우리의 공연을 캠코더로 찍어주던 1기 선배가 오셨다.

“야, 끝에 신지 메인 누구냐? 겁나 잘 추대. 깜짝 놀랐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연극이 끝나고 연기 잘하더란 이야기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잠시 후, 관객석에서 내 공연을 본 태국어과 친구가 찾아왔다.

“야~ 김민. 니 왜 말 안 하는데, 갑자기 니가 나와서 깜짝 놀랐네. 니 춤추는 부분에서 사람들 장난 아니었디. 글고 그 재킷 단추 풀지. 니 배 다 가려서 아쉽더라. 근데 살짝 배 나왔는데, 니 개미허리에 진짜 깜짝 놀랐다.”

춤이며, 똥배며, 모든 게 성공적이었다. 이 정도면 오징어 게임의 우승자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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