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력이 떨어지는 나

by 지음


공감하며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동감(상대와 같은 마음)이 일어나야 공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정말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차가울 정도로 공감이 안 된다. 나 이래도 괜찮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왜 나는 어떤 사람이라서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있고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공감해야만 하는 부분이 공감이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싶다.

사실 공감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왜 공감이 안될까?

이야기가 시작이 되면서 공감이 되지 않을때 나의 입장을 대입하면서 '나는 저 상황이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다.


들으면서 계속 나의 입장을 대입하고 있었다.

상대는 말하는 입장이고 나는 듣는 입장이다.

근데 듣는 입장인 내가

말하는 상대의 입장을

듣는 나의 상황에 계속 대입했던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공감받기를 원하고 말을 하는데

듣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 공감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참 희안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화를 하니, 상대는 공감이 안 되는 것에 또 섭섭해 한다.

거의 아이들에게 신랑에게 친한 친구에게 이런 방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쓰다보니 상대가 섭섭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나랑 상대랑 동일시 했다.

내 말에 지지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도 나의 경험에 의한 인식에 맞는지 여부를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온전히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하고 나름의 자체 검열 점검에 들어간다. 거기에 부합이 되지 않으면 동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경험이 비슷하게 한 것은 적극적인 공감으로 가지만 이야기를 들어도 경험이 포개어지지 않는 이야기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귀에 경읽기인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가 후에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때 그말이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제서야 공감을 한다.


나이에 비해 경험치도 작은데 나의 인식에 의한 판단을 먼저하고 상대의 말을 듣고 있으니 감정선이 상대와 같아질 수가 없다. 그렇게 공감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온전히 들어주지 못하고 나의 입장을 대입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인 것 같다.


그래서,

말을 들을 때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 완전히 이입을 하면 어떨까?

공감을 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상상하면 조금 더 공감이 될까?


위의 두 질문 과연 할 수 있는 일일까?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생각한 것일까?


내가 상대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기뻐서 뛸듯이 손뼉을 칠때는

다는 모르지만 상대의 노력이나 쏟고 있는 정성들이 보여서이다.


아마 100% 상대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한 것이다.

나의 경험에 빗댄 인식들을 꺼집어 내어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가만히 들어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말에 끼어들지 말고 쭉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한다.


쓰다보니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방이 일의 해결을 원하는 것이면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 것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일을 바라보게끔 도와야 하지만 공감을 원하는 일에는 한번씩은 완전 상대의 편에 서서 격하게 공감해 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격하게 나를 공감해주던 아빠가 생각이 난다.

딸이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때 공감을 해주셨구나!!

하소연을 할때 그랬구나!!

본능적으로? 아니면 살아오신 연륜으로? '지금은 공감 해줄때'를 아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판단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것. 그것 하나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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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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