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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함의 쓸모

by 폴리

팀을 옮긴 첫날이었다


“이 PD, 오늘 나하고 점심해요”


팀장님은 식사를 하는 내내

내 생일이나 좋아하는 음식 등

소소한 것들을 물으셨고, 수첩에 적으셨다


그리고

일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밴드 활동에 대해

시시콜콜 관심을 가지시는 듯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 얘기는 안 하고 왜 내 신상조사만 하시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에게도 팀장님에게 잘 보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정보를 얻어볼 심산으로 질문을 던졌다


“팀장님은 혹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이나

출근시간을 지키지 않는 직원을

눈여겨보는 편이에요”


그런 사소한 것들을 통해서

‘타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지’,

‘자신의 삶을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사실 사람들은,

대단한 무엇보단 아주 사소한 것에서

자신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주기도 한다


약속한 것을 잘 지키는지,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는지,

힘없는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등등 말이다


여자친구의 생일날,

선물과 꽃 한 다발을 사 들고

예약해 둔 식당으로 향했다


꽃을 가슴으로 받아 든 그녀는 물었다


“와~~ 꽃 정말 이쁘다…

근데… 이 꽃을 사 온 이유가 있어?”


“왠지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그녀는 한참을 꽃 냄새를 맡았다

마치 감정을 애써 고르려는 사람처럼


“자기는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투정이 섞인 그녀의 미소는 고장 난 듯 어색했다


“내가 어떤 꽃을 좋아하고,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발 사이즈가 몇인지,

무슨 연극을 보고 싶어 했는지…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내가 오며 가며, 산책하며,

통화하며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을 못 하는구나…”


사람들은 아주 빈번히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상대를 위해 애를 쓰곤 한다


나는 그녀에게 선물도 많이 해 주었고,

그녀의 친구들을 잘 챙겨주었고,

그녀의 술자리가 늦어지면

기꺼이 운전기사 노릇을 했다


사람은 목적이 생기면 없던 힘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기쁘게 해 주겠다는 일념은 있었지만,

그녀의 사소한 이야기들은

기억에 가둬 두지 못했다


그녀를 기쁘게 해 주겠다는 노력은

그저 나의 만족을 위한 노력이었다


살아보니,

관계의 틈은 아주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것에서 발생하곤 했다


때론, 물질이나 시간의 할애가

관심의 척도가 되기도 했지만,

오래가는 관계의 사람들에게선

돈이나 시간으로 측량할 수 없는

무형의 신뢰가 있었다


“너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사람이야”


상대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작고 사소한 것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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