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가 있었다
남자 친구가 있었던 그 후배는
이상하게도 그를 더없이 냉정하고 차갑게 대하곤 했다
내색하지 않던 그 남자 친구는
어느 날 내게 술을 사달라고 했고
술자리를 갖는 동안 눈물을 보이며 괴로워했다
며칠 후 나는
작심하고 후배를 불러냈고
둘이 조용한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됐다
술집 마감 시간을 넘기게 되어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새벽까지 이어졌던
우리의 깊은 대화 끝에
그토록 자신의 남자 친구를 사랑했던 녀석에겐
남모를 상처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녀석은 또다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방어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나는 녀석의 무의식이
남자 친구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이렇게 못되게 굴어도
내 곁에 끝까지 남아 줄 사람일까...?’
인간이 받는 상처에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상처로 인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토록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누군가가
정작 소중한 누군가에겐
반복적으로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무관심, 회피, 방어, 감정 기복, 불안 등등
사랑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양지바른 곳에 심어
땅을 다지고 물을 주고 벌레를 쫓아내며 노력해도
쏟아지는 비와 우박과 태풍을 막을 순 없다
반드시 벌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고
떨어져 썩어버린 열매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울부짖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다
누군가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부러진 가지에 부목을 대고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한 나무는 뽑아내어
새로운 씨를 뿌리며 내일을 준비하기도 한다
겪어야만 하는 고통의 과정을 이겨내고
내공을 쌓고 지혜를 얻으며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곤 어느새
노련한 ‘과원 관리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상처를 이겨내고 극복해 나가면서
사람은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상처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미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상처가 가장 대단하고 아플 것이라 생각하지만
풍성한 과실을 얻은 사람의 소매를 걷어보면
수없이 많은 상처의 흔적이 있음을 보게 된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상처받고 싶지 않다면
상처로부터 자신을 풀어주어야 한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작은 물 웅덩이 앞에서도 주저앉게 된다
수영을 배워라
그리고 반복적으로 자신의 몸을 물에 집어던져라
그것이 사랑이다
PS
후배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죄다 쏟아 놓은 덕분에
그 토사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우리 세 사람은 그 병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토사물이 부끄러운가
자신을 특별한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날 이후
후배는 많이 달라졌고
그 두 사람은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