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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즈음에 Oct 22. 2024

비장애형제가 되었습니다 #2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 마음들

그렇게 18살 터울로 태어난 막냇동생의 발달장애를 인식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를 더욱 외면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 전부터 임신한 엄마랑 같이 다니는 것도, 갓 태어난 막냇동생이랑 같이 다니는 것도 너무 싫었다. 전편에 적었듯이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매우 많이" 신경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인식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당시 19살의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체였던 나는 이 심리가 극에 달해있던 상황이었다.


특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나를 막냇동생의 엄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정말이지 끔찍했다. 내가 마냥 애기같은 얼굴이었으면 덜했을 것 같기도 한데, 당시 나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성숙해보이는 얼굴이었다. 고3이 아니라 대학교 3학년, 아니 직장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외모였다. 그러다보니 식당을 가든 상점을 가든 나를 아기엄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고, 나는 우리 가족이 밖에 나갔을 때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을 신경쓰며 '저 사람이 나를 얘 엄마로 오해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상황들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왜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상황들 때문에 이런 시선 속에 괴로워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고 억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자면, 그런 괴로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도 없었다. 인간관계가 매우 좁고 내성적인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어려움을 꾸역꾸역 삼켜내는 쪽을 택했다. 지금도 이때의 나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눈물이 난다. 누군가는 지나친 자기연민이다, 오히려 엄마가 더 힘들지 않았겠냐,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더해 막냇동생이 "발달장애인" 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나는 더더욱 가족과의 외출을 꺼리고, 최대한 막냇동생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했고, 같이 있어도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밥 먹이기, 기저귀 갈아주기, 사진/비디오찍으면서 놀아주기 등 막냇동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1 동생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걔는 나와는 달리 참 정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싶다. (이 동생은 나중에 장애인 관련 진로를 선택한다.)


정 없고 이기적인 나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기를 바랐고, 지극히 평범한 미래를 꿈꾸며 공부에 몰두했다. 대학에 가면, 어른이 되면 내가 원하는 새로운 삶이 펼쳐질거라는 환상을 품으며 간절하게 수능을 쳤고, 감사하게도 원하는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바로 기숙사를 신청하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기다렸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던 20살의 봄, 대학생활은 과연 상상대로 이루어졌을까?

대답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것도 잘 못했다. 그래서 학창시절 내내 나는 친구가 많거나 사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항상 한켠에는 인기가 많고,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고, 스스럼 없이 먼저 다가가는 외향적인 아이들,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 같은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지 못한 나에 대한 열등감과 비교의식, 시기심 같은 못난 마음도 자라났다. 성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더 공부에 매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난 멍청하게도 대학에 가면 모든게 해결되고, 성격까지 바뀔 줄 알았던 것 같다. 드라마속의 여주인공처럼 즐겁게 청춘을 즐기며 멋있는 남자랑 연애도 해보고, 동아리나 각종 모임들을 누비는 "핵인싸" 대학생!말도 안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앞서 말한 상황들을 버텼던 것이다. 당연히 내 성격은 변하지 않았고, 그런 드라마 속의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아주 먼, 공허한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당시 먼저 다가와준 친구가 몇몇 있었는데, 내가 완전히 아싸가 아닐 수 있게 해준 그 친구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때 내 안에 있던 비교의식과 열등감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내가 선망했던 대학교 신입생의 모습으로 통통 튀는 동기들을 보면서, 자꾸만 가족 생각이 났다. "쟤들은 저렇게 걱정 없이 20살을 즐길 수 있어서 좋겠다." "나보다 더 불행한 상황인 사람이 있을까?" 따위의 생각들이 내 마음을 깊은 심연 속으로 데리고 갔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발달장애인 동생이 있다는 얘기는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기숙사 방 안에 혼자 앉아, 이유 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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