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
30대 무경력 백수로 내던져진 올해 봄, 나는 많이 불안했다. 몸담았던 단체의 비리 사건과 그로 인한 내부 분열, 단체를 나오는 과정에서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과 영혼이 갈가리 찢겼다. 내 꿈과 미래도 함께 찢긴 것 같았다. 그 전까지는 동료들과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며 죽을둥 살둥 달려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벼랑 끝에 혼자 멀뚱히 서게 된 기분이랄까? 나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난 10년만에 본가에 완전히 들어가 살게 되었다. 고3때 갑자기 장애형제가 태어난 뒤로 20살이 되자마자 가족들로부터 탈출하기를 꿈꿨던 나는, 대학생때는 기숙사나 자취방에 살았고 단체에 들어간 뒤로는 동료들과 숙소에 살기 시작하면서 방학이나 연휴가 아닌 이상 본가에 붙어있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서른이 되어 집으로 다시 기어 들어갈 줄이야... 독립을 해서 나가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무보수 봉사직에 몸담고 철저한 무소유로 보낸 나의 20대는 30대가 된 나에게 0원인 통장 잔고를 토스해 주었다.
그렇게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내 정체성과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환갑이 가까워오는 부모님과 아직 초등학생인 장애형제를 보면서 나는 다시 자기연민의 늪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만 남은 채 생계를 위해 매일같이 고된 육체 노동을 하고 계시는 신용불량자 아빠와 매일마다 장애형제의 육아로 씨름하는 엄마, 몸은 커졌지만 느리게 자라고 있는 장애형제를 보면서 불행이라는 단어가 눈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막냇동생은 어떻게 되는걸까? 나는 절대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의롭고 아름다운 우애를 가진 비장애형제들의 훌륭함은 나에게 전혀 없다. 하지만 동생을 책임지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손가락질할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마치 내게는 이 선택이 책임감의 지옥에 빠질 것이냐, 죄책감의 지옥에 빠질 것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인 것 같았다. 나는 아무래도 죄책감의 지옥을 선택할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서만 끙끙 앓다가 하루는 큰 마음을 먹고 엄마와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예상 밖으로 엄마는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없다고 했다. 그냥 보통의 형제자매들이 명절때, 생일이나 기일에 얼굴 보듯이, 한두달에 한번 정도 교류하는 정도면 좋겠다고 했다. 그 정도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그게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성년 후견인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처음으로 그 단어를 검색해서 알아봤는데, 장애나 치매 등 스스로 신변을 결정하기 어려운 성인의 경우 후견인을 세워서(여러명을 세울 수도 있다) 재산 관리 등을 돕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건지, 그러면 부모가 없는 성인 발달장애인은 나라에서 전적으로 사회복지사를 통해 케어를 해주는건지, 내가 그냥 가끔 막냇동생이 머물게 될 시설이나 그룹홈에 찾아가면 되는 정도인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아직 걱정이 완전 사라진건 아니다. 역시 부모님이 최대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본인의 상황을 짧게 나누자면, 계약직 일자리를 구해 처음으로 월급을 받아보고, 사고 싶은 것을 사기도 해 보면서 찐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내년에는 일을 멈추고 정규직 전환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 동기들보다 7-8년을 늦어지게 되는게 너무 아깝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눈물을 삼키며 받아들이고 앞으로를 생각하기로 했다. 이 모든 상황들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주어졌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비장애형제가 된 이후 지금까지의 삶을 나눴던, 어찌보면 저의 깊은 자기소개 같은 "비장애형제가 되었습니다"를 마무리 합니다. 앞으로 업로드 주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고민들을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비장애형제로서의 고민도 그렇고, 미래, 가족, 인간관계 등 도대체 답을 알 수 없어 버거운 고민들, 날마다 그 고민들과 부딪히는 제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장으로 브런치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같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이미 그 고민의 답을 찾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공감과 위로, 응원이 있기를 소망하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