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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즈음에 Nov 20. 2024

내 안에 있는 모순

전혀 착하지 않은, 못되 쳐먹은 비장애형제의 속마음

*가명을 사용하겠습니다

-막냇동생(18살터울, 장애형제): 동동이

-큰동생(2살터울): 방방이


 나는 비장애형제다. 특별한 점은 장애형제와 나이차이가 아주 많이 난다. 자라는 내내 비장애인 방방이와 치고받고 싸우면서 자라다가, 내가 성인이 되기 직전에 발달장애를 가진 동동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비장애형제 자체는 꽤 많지만, 나같이 장애형제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케이스는 전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만나보거나 매체를 통해 접한, 발달장애를 가진 형제를 둔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이러했다. 어렸을때부터 장애형제랑 자라면서 어느 순간 형제가 가진 장애를 인식하게 되고, 부모님으로부터 과도한 기대나 책임감을 부여받는다던지, 착한아이 컴플렉스에 걸린다던지, 장애형제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던지,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성장하게 된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다. 그런 분들에게서는 보통 장애형제를 아끼고 애정하는 마음,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으신 마음고생으로 인한 성숙함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생각 많은 둘째언니 라는 유튜버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정치인이 되신 정혜영님이나, 선쁘라는 채널을 운영하시는 여동생분(이름을 모르겠다) 같은 경우랄까?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나는 일단 엄마가 동동이를 임신했던 순간부터 그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태어나고 나서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동일했다. 거의 없는 사람 취급했다고 보면 되겠다. 동동이와 최대한 교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나의 삶을 살았다. 동동이가 태어났을 때 난 고3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처박혀 공부만 하느라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고, 대학에 간 이후에는 기숙사다 자취다 숙소다 집에 붙어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주말이나 방학에는 집에 있었지만 동동이를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엄마도 이런 나에게 동동이의 육아에 대한 그 어떤 부담이나 책임도 지우지 않았다. 애를 봐달라고 한 적도 없고, 식사를 챙겨주라고 한 적도 없고, 어딜 데려가라거나 데리고 오라거나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동동이를 부담스러워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엄마는 이런 나를 비난하거나 타박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엄청난 책임감의 소유자인 엄마는, 그 책임감을 누군가에게 절대로 억지로 지우고자 하지 않았다. 반면에 방방이는 달랐다. 방방이는 동동이가 태어났을때부터 동생이 생겼다며 좋아했고, 동동이가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동일하게 잘 돌봐주었다. 나는 그나마 최근 2-3년 들어 장애형제에게 말도 붙여보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거리감은 존재한다. 한마디로, 동동이랑 별로 친하지 않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궁금한 점은, 지금까지 동동이를 최대한 철저히 무시하고 동동이의 양육과정에 있어서 그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은 주제에 왜 동동이때문에 이렇게나 큰 불행을 느끼는가? 이다. 


 나는 동동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생명과학 교과서의 유전 파트를 더욱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생식세포 유전자가 잘 분열하고 잘 찢어졌으면 되는데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된거야? 정자와 난자가 노화되어서(엄마가 거의 쉰에 낳으셨다) 세포 안에 있는 소기관들이 좀 힘이 딸렸나? 방추사가 부족했었나? 아니 왜 그때만 피임을 실패했던거야? 아빠는 왜 정관수술을 하지 않았던거야? 혹시 장애 여부를 미리 알았으면 아기를 지웠으려나? 아니야 엄마아빠 성격을 보면 그냥 낳으셨겠지? 등등 절대 입 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정말이지 절대로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내 생각이 쓰레기같은 생각이라는걸 너무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모든 면에서 동동이의 발달이 느린 모습을 실감하면서 동동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동동이가 없다면 어땠을까, 동동이가 비장애인이라면 어땠을까 와 같은 생각이 자꾸, 자꾸만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동동이는 정말 느리게 걸었고, 정말 정말 느리게 말을 했다. 가족들끼리 외출할 때면 동동이는 항상 이상한 행동들을 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상한 소리, 몸짓 하나하나가 나에겐 너무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동동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너무 싫었다. 동정의 시선, 깜짝 놀란 눈빛, 경멸이나 무시 등.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동동이와 1cm라도 멀리 있도록 노력했다. 전혀 상관 없는 사람처럼 엄마가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를 뒤에서 지켜보는것을 선택한다. 10년이 넘도록 내 안에 죄책감이 쌓여만 가는 이유다.


 동동이는 속도 없게 이런 나를 좋아해준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고, 사랑의 총알을 마구 날린다.


 나는 동동이를 사랑하는걸까?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은 희생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동동이를 위해 내 의지로 희생한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감히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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