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달리며 나를 배우다

by 박준식

그날 새벽,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공릉천 위로 옅은 안개가 내려앉아 길과 강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고, 가로등 불빛은 물결 위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한 시간, 나는 한참을 서 있다가 문득 한 걸음을 내딛었다.

심장은 금세 거칠게 뛰기 시작했고, 숨은 빠르게 가빠졌다. 몸은 분명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편함이 싫지 않았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마음이, 그 순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살고 싶었다. 조용히 무너져가던 내 안의 생명을 다시 깨우고 싶었다.

군 생활 중 입었던 부상 이후, 나는 몸뿐 아니라 마음의 리듬까지 잃어버린 상태였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깊은 좌절로 남았다. 운동을 멀리할수록 마음은 무거워졌고,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점점 버거워졌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그저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평범한 발걸음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도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달리기는 기록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시 나를 찾기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 며칠은 쉽지 않았다. 몸은 둔했고, 생각은 복잡했다. 숨은 쉽게 흐트러졌고, 다리는 금세 무거워졌다. 하지만 뛰는 동안만큼은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해야 할 일도, 걱정도 잠시 뒤로 밀려났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달렸다. 공기의 냄새, 신발 밑의 감촉, 귓가를 스치는 바람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나는 매번 달랐다. 어떤 날은 단단했고, 어떤 날은 흔들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모든 날들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달리기를 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은 화려한 도약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삶은 그저 꾸준한 반복과 작은 걸음 속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세상은 늘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높이 가라고 말하지만 달리기는 나에게 전혀 다른 언어로 말했다. “멈추지 않으면 된다.”

이 책은 달리기의 기록이 아니다. 한 사람이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다시 존재의 리듬을 찾아가는 시간의 이야기다. 달리기는 내게 운동이 아니라 명상이었고, 호흡은 리듬이 되었으며, 그 리듬은 다시 삶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내 몸을 이해했고, 내 마음을 받아들였으며, 결국 나 자신을 조금씩 용서할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단 한 가지다. 꾸준함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 오늘도 나는 새벽 공기를 들이마신다. 어둠은 여전하고 바람은 차갑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는 달릴 것이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 나는 다시 나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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