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인 새벽

첫 걸음의 기억

by 박준식

그 새벽은 유난히 조용했다.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옅은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흔들리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잠시 멈춘 것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아직 달릴 준비가 된 몸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달릴 수 없었다.
부상 이후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보낸 시간은
몸보다 마음을 더 지치게 만들고 있던 때였다.
걷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웠고,
뛰는 일은 여전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그 길에 서고 싶었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시간.
그곳이라면 괜히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작은 소리를 냈고,
물가에서는 바람이 낮게 스쳤다.
그 평범한 소리들이
오히려 마음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다가
문득 앞을 보았다.
저 멀리, 누군가가 달리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특별할 것 없는 발걸음.
그런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 눈에 남았다.

그 순간,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나도 저렇게 달리고 싶다.’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런 마음이 올라왔다.

놀랐던 건 그 다음이었다.
그 마음이 생각보다 간절했기 때문이다.
오래 잊고 있던 감각처럼,
갑자기 되살아난 어떤 욕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뛰고 싶다는 마음과
뛸 수 있다는 몸 사이에는
아직 넘어야 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달리지 않았다.
신발을 고쳐 신지도 않았고,
속도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달리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몸은 조심스러웠지만,
마음은 더 이상 완전히 멈춰 있지 않았다.

그날은 휴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그리고 다섯 정거장을 지나
문득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걷고 싶었다.

집까지는 꽤 걸어야 했다.
다리는 계속 아팠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편함이 따라왔다.
몸은 분명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길을 걸어왔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날 새벽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달리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 새벽은
내 인생에서 가장 조용한 출발선이었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분명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은 걷고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조금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 달리기는
그 다섯 정거장 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금, 일 연재
이전 02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