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내려놓자, 목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속도가 아닌 나의 방향을 찾는 법

by 박준식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기록을 보게 되었다.
거리, 시간, 페이스.
숫자는 분명했고,
그만큼 비교도 쉬웠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록이 마음에 남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느리면 이유를 찾았고,
누군가의 기록을 보면
괜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비교가
달리기를 조금씩 무겁게 만들고 있다는 걸.

기록은 나를 평가했다.
잘한 날과 못한 날을 나눴고,
나는 그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재단하고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와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기록을 보지 않고 달려보고 싶어졌다.
시계 화면을 끄고,
거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숨과 발걸음에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몸이 한결 가벼웠다.
속도를 의식하지 않으니
호흡이 자연스러워졌고,
발걸음도 부드러워졌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달리기를 하며
찾고 있던 건
‘더 빠른 나’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나’였다는 것을.

목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의 목표는 늘 숫자였다.


몇 킬로를 뛰는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하지만 그 목표들은
나를 앞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쉽게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목표를 바꾸었다.


기록을 세우는 목표 대신
리듬을 지키는 목표로.
잘 달리는 하루가 아니라
빠지지 않는 하루로.

그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달리기가 다시 편안해졌고,
하루의 시작과 끝이
조용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남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으니
나만의 방향이 보였다.


그 방향은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했고,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기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에
나를 맡기지 않을 뿐이다.
숫자는 참고가 될 수 있지만,
삶의 기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통해 배운 건
이것이었다.


목표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기록을 내려놓자
비로소 보였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그리고 그 방향 위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한 걸음을 이어간다.

early-morning-run.jpg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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