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현실의 충돌, 그리고 생존 '브루탈리스트'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by 한 권 한 편
브루탈리스트.jpg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브래디 코베의 〈브루탈리스트〉는 건축으로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으로 이주한 헝가리계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여정은 예술적 야망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민자의 초상화다.


영화는 헝가리 출신 토스가 전쟁의 기억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새로운 나라에서 그는 재능을 펼치고자 하지만, 이민자의 현실은 결코 순탄치 않다.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의 후원으로 건축 프로젝트를 맡게 되지만,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편견이 그의 이상을 가로막는다. 그중 토스가 설계한 건물의 높이가 예산 문제로 제한되는 과정은 개인의 꿈이 시스템 속에서 변질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코베 감독은 1950년대 이민자의 삶과 미국 사회의 모순을 예술적으로 해석한다. 특히 비스타비전 카메라를 활용한 촬영 기법은 시대적 질감을 현실감 있게 재현한다. 건축물은 배경이 아닌 서사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초반부의 낡은 아파트와 후반부의 웅장한 문화센터는 토스의 여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대비하며, 그의 삶이 제한된 공간에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브루탈리스트2.jpg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도 작품의 핵심 축이다. 그는 토스를 단순히 야망 있는 건축가가 아닌, 전쟁의 상처를 품고 새 삶을 개척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특히 대사 없이도 감정을 전달하는 눈빛 연기와 내면적 갈등과 외부적 도전이 부딪히는 순간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 해리슨도 단순한 적대자가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토스에게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예술보다 경제 논리를 우선시한다.


영화에는 반복되는 계단 오르기와 문화센터의 높이를 제한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토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지만, 언제나 제약과 한계에 부딪힌다.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성공을 향한 도전이면서도 끊임없는 시련을 암시한다. 건물 높이의 제한은 그의 꿈이 경제·사회적 현실에 압박받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이 요소들은 이민자의 한계, 예술과 자본의 충돌, 그리고 개인이 사회에서 겪는 억압을 상징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QMFNXKFFLXMTM 34.jpg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브루탈리스트〉는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이동진 평론가는 "고전이 될 운명을 타고난 영화"라고 평했다. 21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깊이 있는 서사와 몰입감으로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 무거운 주제와 느린 전개가 호불호를 가르기도 했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메시지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브루탈리스트〉는 건축가의 이야기를 넘어, 예술과 현실이 충돌하는 공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탐구한다. 토스의 도전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이야기로 다가온다. 코베 감독은 시각적 장치로 역사적 재현을 넘어선 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브로디의 연기와 함께, 이 영화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깊이 있는 서사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가? 예술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 답을 품은 영화 ‘브루탈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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