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것 하나없는 은혜의 삶

어느새 내가 여기까지 왔네

by 남재 이진주

오늘도 강한 어조로 “날씨가 푹푹 찐다”라고 표현해도 언뜻 피부로 느끼기에는 부족한 듯한 날씨다.

연일 폭염으로 예년의 기온을 갱신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아침 시간을 건지산에서 보내게 된다.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많은 차들이 모여 주차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다. 그늘이 있는 장소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숲길에 들어섰다. 아침인데도 숨이 턱 막히는 무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이 무겁게 짓눌렀다.

매미들은 아침부터 최고의 데시벨을 올리고 있다. 마치 속에서 금속 잘리는 소리처럼 들리니 더욱 짜증스럽게 한다.

오늘은 유난히도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숲속을 흔들고 멀리까지 울리고 있다.

그늘이 덮고 있는 건지산 숲길은 시원한 바람 한 점 없는 숨막히는 정글을 걷는 기분이었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잔뜩 품은 진흙 길은 우리네 인생길처럼 반질거리게 닳아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땀방울 훔치며 걷던 아침 길은 더욱 몸을 무겁게 했다. 어쩌다 연신 부채질하며 걷는 사람 곁을 지나면 흩어진 바람 조금 맛보고 간다. 그냥 기분 나쁘지 않은 바람이라 생각하며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며 내게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를 시원하게 맞이하려 하고 있다.

하루종일 에어컨이 없으면 견디기 어렵다고 느끼는 요즘 밤잠을 설치는 열대야까지 결코 쉬운 하루는 아니다. 인생 살아가는 일 중에 기후에 민감해지는 것을 보니 세월을 오래 살아왔다는 것을 묘하게 느끼게 한다.

그동안 지루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시간들에서도 오래도록 살아가려는 바람은 일회성 인간으로서 겪게 되는 짠한 바램일 것이다. 그렇듯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그나마 오늘 하루에서도 질서없는 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면서 오늘도 나만은 살아있음에 지루하지 않은 감사를 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고 엄마와 가족이 함께 있으면 최고의 안심이었다. 청소년 시절은 비로소 치열한 생존경쟁 대열에 서게 되면서 아직 그 깊은 의미를 모르고 어른들의 강요와 안내의 길에서 충성하게 되었다. 그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찌 인생살이가 똑같을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자기 위로의 시간에 안주하게 되었다.

열정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되고 자기만의 흥분된 길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다 세기라도 할듯 의기 양양 하기도 했다.

진짜 인생살이가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매력적인 대안적 삶에 때론 쓰디쓴 버거운 대가를 치르기도 했었다.

때론 경쟁에서 쳐지면서 자괴감도 무겁게 지고 살아갔지만 부당하고 지독한 차별 앞에서 가슴 쪼그라지는 무기력함도 간신히 견디어 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날씨를 운운하는 것은 살아왔던 날들에서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일들이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나온 날들에 대한 소회도 있지만 존재감없고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짠한 내 모습에 힘들어하곤 한다.

어제는 외손자 중 막내 격인 애가 벽과 소파에 볼펜으로 낙서를 해 놓았다.

알 수 없는 사차원의 그림을 온통 개미행로처럼 의미를 추정할 수 없게 그려 놓았다.

언젠가는 큰손주가 내 방에 붉은 크레파스로 알 수 없는 개미행로를 똑같이 그려 놓아 깜짝 놀라서 왜 그랬는지 물었더니 “할아버지 방을 예쁘게 해 주려고 그랬어?”라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어떻게 혼을 낼 수 있었겠는가.

이 아이에게는 나를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한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이 아이는 자기가 살아가는 인생의 행로에서 자기의 과정을 표현했을 뿐이라 믿는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겐 이 아이들의 어미와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워낙 내가 아이들의 분별없는 행위에 대해서 단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이들의 어미는 내가 낳아서 키운 아이들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미 아이들의 어미는 나의 영향력 아래서 살아 왔음을 잊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살아갈 날들이 나와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직은 손주는 나를 특별하게 따르는 아이이다. 그래서 다른 놈들보다 조금은 마음이 더 주어지곤 한다.

어떤 행위에 대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모르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으나 발생한 현실에 대한 속상함은 나만의 것이기에 받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내 표현을 싫다고 하는 내 아이들의 반응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남들처럼 마음 느긋한 아비가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치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이 일회용 인생임에 안타까움을 느끼다 서글픈 마음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회용물건도 내 인생보다 오래 간직하기도 하기에 어쩌다 이렇게 비하되었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사용했던 물건이나 작품들은 어느날 진품명품에 소개되기도 하는데 사람은 오래되면 냄새가 나고 거부감을 갖는 존재감없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이렇게 무더운 날 날씨가 너무 덥다고 중얼거리며 소파에 그려진 개미의 행로를 조금씩 지워 나갔다. 다행히도 소파에 흔적은 지웠으나 벽지에 그려진 행로는 지우지 못했다.

볼 때마다 야속한 손자 놈이 생각났지만 그런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부질없는 나만의 속상함에 아내만 째려보았더니 아내는 더욱 더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를 공격해 왔다. 내가 낳은 아이들도, 내 편인 줄 알았던 아내도, 아무 생각 없는 손주들 모두 나만의 아랑곳없는 속상함이었다.

내가 살아 오는 동안 모든 순간들이 당연한것은 아니었다는 찬양곡의 가사처럼 온 삶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부인 할수 없다.

내삶에 축복과 감사로 살아 오게 하였음에도 때론 불평하고 불만했던 시간들이 기억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허리 협착증도 호전되었고 나이 들어 쓸쓸하지 않을 만큼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도 남보다는 더 많은 행운을 안고 살아왔음에 틀림없다. 여러지역을 다니며 맛집과 잘 가꾸어진 정원 카페를 탐방해 보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글쓰기와 문화예술에 다양한 재능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 축복이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준수한 외모와 특별하지 않은 평온한 성품은 내 자랑이 아닌 평판이었다.

막막하고 두려운 길에서도 나는 방황하지 않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평정을 유지하는 지혜도 지녔었다.

모든 인생길에서 단 한 번도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눈동자처럼 아끼고 사랑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지탱하게 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내 삶을 되돌아볼 때에도 참 많이 변하고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살아오면서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다. 행동도 마음도 습관도 가치관도 조금씩 달라지다가 그러한 변화들이 쌓이다 보면 얼굴 표정도 변하고 걸음걸이도 변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변하게 된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가난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셨다는 것을 나는 내심 알고 있다. 우리 엄마 또한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 평생 수건을 머리에 쓰고 몸으로 벌어서 먹고살았다.

우리 부모님의 60대는 그야말로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두 분의 인생에서 나는 작은 위로를 드리는 일 외에는 두 분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력에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내가 60대 중후반을 살아가면서 나 또한 내 부모님이 살았던 시절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또한 내 아이들과 분명히 다른 시절을 살고 있기에 내 손주들과의 관계에서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살이에서 항상 정리 정돈된 삶을 살아왔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어수선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


착하고 충실한 삶에서 겪어야 했던 커다란 수난은 없었다. 어쩜 가장 무난하고 평탄한 축복된 인생을 살았음에 감사한다. 작은 어려움은 있었으나 오히려 나를 발전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오늘 날 이 시절에 내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고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오늘도 “푹푹 찌는 폭염”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내 삶이 단조로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며 잘 살아왔다는 증명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부터 내 인생은 작은 일에 연연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일회용 용도가 다 되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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