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숲길을 걸으며
내 책상 앞에는 건빵 두 봉지와 치즈케이크 한 팩이 책 위에 놓여 있다.
작지만 내게는 안성맞춤인 원목 책상과 편안한 의자가 있다.
책꽂이에는 십 여권의 책이 땀띠 나게 붙어서 극한의 올여름을 나고 있다.
작은 노트북에는 지금까지 모아두는 보물 같은 수집품들이 잘 정리되지 않은 채 담겨 있다.
토너가 다 소모되지도 않았는데 한동안 작동을 하지 않고 있는 레이저프린터는 고장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쓰기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캘리그래피 작업하는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도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극한의 더위는 식을 줄을 모른다,
매주 수요일에는 친구랑 내장산 그늘숲길인 트레킹 길을 걷는다.
오늘도 아침 이른 시간에 전주에서 정읍 내장산 근처인 약속 장소로 향했다.
유난히 하늘은 푸르고 멀리 산등성이에는 눈송이처럼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하얀 구름이다.
어렸을 적에 불렀던 여름성경학교 교가가 입안에서 맴돈다.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손에 손 마주 잡은 우리 어린이 발걸음 가벼웁게 찾아가는 길”
나는 어린이처럼 요즘에는 보기힘든 흰 구름을 보면서 어린 시절 마음으로 내장산으로 향하고 있다.
구름이 만들어 주는 갖가지 재미난 형상들을 신기하게 느끼며 아침 햇살에 눈부셔하면서 차를 달리고 있다.
멀리까지 펼쳐진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다. 점점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벼를 알차게 익혀주듯 햇살은 따갑기만 하다.
고추잠자리가 논둑에 낮게 날고 참새들은 떼를 지어 날고 있다.
밭두렁에 두어 고랑 심어놓은 단 수수 모가지가 붉게 영글기 시작했다.
동화 같은 가을은 어느새 들판에 스며들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오늘도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내장사 초록단풍나무 그늘길을 따라 바람조차 누워버린 정읍천의 상류를 향해 걸었다. 연신 부채짓을 하면서 더위에 지친 상사화를 모른척하고 지나게 된다.
어제저녁에 내린 소나기 때문에 계곡 내린천에는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가 산길을 더욱 재미나게 한다.
이길에서는 숲의 숨결을 느끼고 가슴으로 담아보는 자연의 신비로움에서 표현할 수 없는 멋진 휴식을 맛보게 된다.
그늘진 숲길에 조성된 무장애 길을 걷다보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우화정 옆을 지나서 내장사 경내에 다다르게 된다.
조금 있으면 애기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찾는 이가 많지는 않지만 9개의 봉우리로 감싸고 있는 내장사 경내를 향하는 길은 초록 단풍나무와 흰 구름 두둥실 피어오르는 신선함으로 가득한 최고의 힐링 포인트이기도 하다. 몇년전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대웅전이 재건되어 재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항상 내장산 내장사 담을 타고 경내를 지나쳐 계곡을 따라 원적암 오르는 길까지 걷게 된다.
원적암에서 백련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름 산행코스로 초록단풍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산행길이다. 원적암 오르는 길에 쉼을 위해 만들어진 나무 벤치에서 열기로 뜨거워진 숨을 식히고 숲에 사는 식물들과 깊이 교감하게 된다. 이 길은 분명 단순한 트레킹 길이 아니라 자연과 친밀해지는 특별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약 1시간가량 소요되는 거리로 왕복하게 되면 1.2만 보 정도 걷게 된다.
이번 달에는 내가 참가하는 걷기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어서 하루 목표치는 달성한 편이다.
햇살이 나뭇가지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휴, 덥다. 오늘은 바람한점 없네"혼잣말을 하게 된다.
습기가 가득한 숲길에서 무심코 지나면서 못 보았던 버섯을 보게 되었다. 오늘따라 나무가 만들어 내놓은 작품 같은 버섯을 보고 신기한 듯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이어서 나중에 찾아볼 요량이다.
인간사는 세상에 만약에 숲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막이 산처럼 드넓게 이어진 중동이나 몽골의 사막을 상상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듯했다.
AI가 실생활에 등장한 요즘 우리들의 삶에서 산과 숲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인간 세상이 만들어 내는 걱정과 염려, 고난의 삶은 자연에서 치유되고 용기를 얻게 된다는 명약 처방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친구하고 길을 걸으면서 세상사 예기로 점철된 시간을 허비한 듯 하지만 그 길에서 쓸데없는 걱정이나 염려, 부정적인 생각들을 정화하게 되었으니 더할 바 없는 즐거운 숲길인 것이다.
걷기를 마치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새로 생겼다는 칼국수 식당이었다.
우리는 칼국수와 튀김한접시를 시켰다. 곡식을 익어가게 하는 따가운 더위는 창문으로 달겨 들었고 손님들은 시원한 에어컨 앞으로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여자 주인인 듯 우리를 화장실 입구 쪽으로 안내했다. 반대쪽에 자리가 있었으나 시원한 곳으로 앉으라는 배려였을까? 아니면 한쪽부터 채우려는 여주인의 생각이었을까?..
친구는 화장실 입구 쪽에 앉기를 원치 않았고 결국 에어컨 바로 앞으로 자리를 했다. 그 자리는 내가 앉은자리에서 맞바람을 맞게 되어 조금은 춥게 느껴졌다. “사장님, 에어컨 바람 좀 위로 올려 주시면 안 될까요?”했더니 퉁명스럽게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저쪽에 앉으라고 했잖아요.”“그리고 다른 사람도 시원해야 하니까 에어컨 바람길을 올릴 수 없네요.”라고 했다.
순식간에 음식맛이 달아나는 듯했다. 나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하여도 친절함이 없는 식당에는 두 번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읍에 내가 자주 찾는 쌍화탕 찻집이 있다. 늘 손님의 발길이 가득한 곳이며 친절과 배려는 최고라는 평을 아끼지 않는다. 잘 되는 곳에는 분명히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친절함과 배려> 일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 뜨거운 칼국수를 먹느라 마음까지도 불편하였다.
점심은 그럭저럭 먹었으나 숲향기 있는 찻집에 가기로 했다.
<임산물체험단지> 내 "차향문화관"이라는 곳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찾아갔다. 내장저수지 밑으로 내려가면 어린이들의 최고의 놀이터 <천사히어로즈>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색적으로 족욕 체험과 차를 마실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읍시에서 직접 운영한다는 이곳 분위기는 첫눈에 “매우 만족”이라는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먼저 차를 주문하고 족욕 입장료를 계산하면 할인도 해 주었다. 족욕실은 안마기를 부착한 편안한 기구를 갖추고 있었다.
약 30분간 하게 되는 족욕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족욕 후 조용하고 쾌적한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는 매우 만족함으로 추억될 것이다.
이곳에는 나무 이야기와 나무로 소품들을 제작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아이들이나 학생들이 주로 많이 참여하고 있고 간혹 어른들도 체험에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다는 설명도 듣게 되었다.
나는 정읍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도 처음 와 본 곳이었다. 이런 곳에 오게 되면 “정읍은 참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평하게 된다. 뾰족한 봉우리를 올린 산과 아름다운 단풍을 피워내고 무장애 길을 내어주어 모든 사람에게 차별과 편견을 갖지 않은 내장산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저수지가 두 개나 있고 오래전 사람들이 살다가 떠난 생태보전 산지습지 <월영습지>가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끌었던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듯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움이 있다. 훌륭한 학자가 있어 신분 차별 없이 인재를 키워낸 열린 학문 공간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있다. 호남 제일의 정자로 알려진 향기가 주변에 가득하였다는 <피향정(披香亭)>의 연꽃이 오래전 풍월을 들었으리라. 행상을 나간 남편의 밤길을 염려하는 아내의 애절한 노래인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를 기념한 테마공원 <달하>가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담고 있는 곳이며 빼어난 자연경관과 관광지로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없다.
맛과 멋과 풍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여행지이며 힐링 포인트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룡동 허브원 하늘 아래에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정읍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