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그리움도 같이 내린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 천둥과 번개가 연달아 반복되고 있다.
빗소리가 안방까지 달려드니 그 빗소리 또한 요란하다. 전주시 전역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으니 위험지역 방문을 자제하고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연거푸 답지한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특히 농촌에 사시는 분들이 농작물 피해와 집 주변의 안전에 긴장을 하게 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저지대에서는 상가나 지하층의 침수 등 걱정거리가 생겨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극한 폭염이 계속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과 저수지 녹조현상이 확산되어 정부 당국에서도 다양한 해소 방법을 찾고 있었던 터라 반가운 비 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국지적으로 내리는 현상이 잦은 요즘에는 많은 피해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낭만이 있는 비였으나 지금에는 걱정이 많아지는 비가 되고 말았다.
지구상에 모든 민족들이 처음 겪는 폭염과 폭우 등 자연재해가 끔찍할 정도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 주듯이~”오래전 노래인 최고의 통기타가수채은옥의 <빗물>이라는 노래 가사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 옷깃을 세워주면서 우산을 받쳐준 사람~” 허스키한 목소리로 많은 청춘남녀의 애환을 노래했던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었다. 나도 한때는 비가 내리는 날 창문에 가까이 앉아서 한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깊은 감성에 젖어볼 때가 있었다.
연애편지를 써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도 싶었다.
“돌아보면은 아무도 없고 쓸쓸하게 내리는 빗물 빗물~”
작은 섬마을 소년은 어쩌다 비 오는 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하늘 저 멀리로 날아오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특정한 사람은 없지만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순수함이 있었고 순정이 있었던 나의 이십 대는 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 삶에 찌들어 누렇게 변색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편에 반딧불처럼 빛나는 사랑이 있고 청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때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란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리움을 알아가기도 했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사람이 누군 줄도 모르고 비가 오는 날에는 그리워하는 마음을 같이 느끼게 되는 마음 여린 청년 시절도 있었다.
이런 시절도, 비를 맞으며 낭만을 알아가던 시절도, 이제는 막연하게 기억해 보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요즘 내리는 비는 그런 낭만과 사랑이 없다. 사람들의 감성이 메말라 가는 것처럼 자연도 우리에게 더 이상의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감성을 주지 않는가 본다.
빗소리가 금세 잦아든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마루 끝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마음까지 축축하게 젖어드는 그런 비가 아니다.
오늘도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누구를 만나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도서관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은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인문학 그랜드투어> 강의가 있다고 했다.
직장 생활할 때는 전혀 찾지 않던 도서관이 이제는 최고의 휴식처요 힐링 포인트가 되었다. 수많은 책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듯 도서관의 풍경은 예전에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특별한 할 일이 없는 날은 도서관에 가게 된다. 나를 아무런 차별 없이 받아주고 자리를 내어주는 아량이 있고 자유가 있고 작은 감성을 살려 갈 수 있는 곳이다.
장우산을 꺼내 들고 에코백 왼쪽 어깨에 걸쳐 길을 나섰다. 집에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아주 쾌적하고 좋은 우리 동네 잘생긴 도서관이 있다. 이곳에는 수험생들도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이들도, 퇴직 이후에 맞춤형 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 공간과 체험 공간이 있고 외국인과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습공간도 준비되어 있다. 매일 새로운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신문과 월간지들이 비치되어 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평생학습 문화공간이 함께 하고 있어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다변화된 공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주민들에게 행정편의를 제공하는 주민센터의 역할도 담당해 주고 있다.
오늘같이 비가 오거나 폭염에서도, 추운 날씨나 폭설에서도 대피 공간이 되어준다. 언제나 주민들의 감성을 존중해 주고 자유롭게 이용하며 개인의 소양을 쌓기도 하며 창작과 지식을 탐구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쉼의 공간이 되어주고 더불어 책들도 잠을 자는 시간이 있으며 때론 아주 좋은 만남의 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오늘은 비를 핑계 삼아 아침 운동을 거르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2025년 지혜학교> 인문학 그랜드 투어“일취월장 미국”편 강의를 청강생으로 참여하고 싶었다.
6월부터 진행되었는데 우연하게 관련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오늘 강의는 “자유와 다양성을 노래하는 탐험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라는 내용으로 관심을 끄는 내용이었다..
우선 도서관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청강생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담당자는 자리가 다 차지 않으면 흔쾌히 청강생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아메리칸드림의 서시”라며 소개되는 뮤지컬 “물랑루주”를 소개하며 시작되었다. 미국 초기의 이민자들의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 가장 이상적인 아메리칸드림의 이상적인 서사를 노래했다고 소개해 주었다.
황량한 땅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부를 향한 서부 개척자들의 이야기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경제적 호황기를 통해 물질의 풍요와 낙관주의가 지배했던 시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세계 2차 대전을 통해 미국은 세계 최 강대국으로 부상하며 압도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짧은 시간에 엄청남 경제, 문화 군사 대국이 되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이겨내며 전 세계의 문화적 자산을 축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온 세계가 문화적 융합 공동체임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한 강사는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지식을 담을 수 없으니 미국 편은 뮤지컬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공감의 이해를 구하는 듯했다.
매주 화요일 10시부터 3시간가량 진행되는 강의는 앞으로 두 번 더 진행된다고 한다. 다음 시간에 소개되는 나라는 <이스라엘>로 “선택받은 민족, 유랑의 역사, 이스라엘의 지혜”라는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면서 변해버린 많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를 살아가면서 빗방울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도 없다.
요사이 내리는 빗방울 소리는 급하고 여유가 없으며 빗물은 인정사정없다는 것이다.
천둥 번개가 치면 이불속으로 숨던 두려움도 없어졌고 논둑이 무너지면 삽 들고 나서던 아버지의 모습도 볼 수가 없다.
오늘도 도서관 강의실에서 바라본 창밖의 불편한 진실은 어쩌면 나 혼자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지...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어쩔 것인가?
갑자기 그리움이 찾아든다면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지나가야 하는지....
지금은 말할 수 없는 나의 젊은 시절에 조용하게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섬들 사이를 날아가는 갈매기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났던 섬마을 초가삼간은 이미 무너져 흔적조차 없고 마당에 골을 내며 흐르던 빗물의 흔적도 볼 수 없다.
비가 많이 오면 빗줄기 타고 올라가다 집마당에 떨어졌다는 미꾸라지도 볼 수가 없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아름다운 그리움이 있었던 시절은 지금에 말하기는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오래도록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