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생 동안 많이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by 남재 이진주

어제는 정년퇴직을 하게 된 후배가 “내일 점심식사 같이 하실까요?”

“시간이 되시나 모르겠습니다.”라며 전화를 했다.

매사에 신중하고 틀림없는 후배다.

함께 일하면서도 이 사람은 믿을 수 있었고 내편이라고 생각한 틀림없는 아끼는 후배였다.

그가 벌써 정년퇴직을 하고 자연인(노인?)이 되었으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이 친구는 내가 입사를 도와준 절친했던 지인의 조카이기도 했다.

그와의 인연으로 내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랬다, 나는 오늘도 이 친구가 밥을 먹자고 연락이 와서 너무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지난날에 있었던 큰 사고에서 무사하게 다시 돌아왔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회사일에 처음 적응해 나가던 어느 날 “회사죠?. 직원이 병원에 왔는데 중상인듯합니다.” 소식을 접한 나는 누가 사고를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한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모습을 보았으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얼굴 부위를 많이 다쳤기 때문인지 퉁퉁 부은 얼굴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근무복을 보고 이름표를 보고서야 이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이 절망적이었다. 어쩌면 다시 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기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요동치는 가슴을 달래며 이름을 불러보고 반응을 지켜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잘못되었구나!”

응급조치를 하고 큰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고 의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이 친구는 이미 결혼을 하였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

늦은 나이에 변변한 직장이 없다가 나를 만나서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서 안심인 줄 알았는데 이런 변고를 당해서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마음이 무겁게 자리했다.

사고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치료를 잘 마치고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일상생활에 적응할 단계가 되어 회사에 복귀하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도 사고 후유증으로 가끔은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여진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은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모범적으로 잘 마치고 우수한 족적을 남긴 채 정년퇴직을 했다는 것이다.

정년퇴직을 하는 날 찾아가서 식사를 같이하고 그 순간을 축하해 주었다.

나보다는 5년 늦게 정년퇴직을 했지만 이 친구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무례하지 않았고 언제나 존중해주는 신의에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한말일까?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이 친구의 성품은 부드럽고 밝고 의리를 알고 존중과 배려, 신뢰와 섬김의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이다.

식사를 마치고 추석이 다가왔다고 한과 선물 세트를 내밀며 작지만 받아 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건네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받아 들고 오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유교적인 가르침을 받고 자란 나는 언제나 선친의 가르침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고로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치셨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다섯 가지 덕목을 마음에 세기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알고 그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여 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관계>를 끊게 되는 사례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인기 가수의 노래 중에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나 보다. 진심을 다해도 나에게 상처를 주네.”라는 가사가 늘 내 마음을 위로했었다.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잘 모르나 보다. 사람은 보여도 마음은 보이지 않아”라는 가사는 변해버린 상대에게서 나의 부덕의 소치를 일깨워준 말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직원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말 나쁜 잘못을 했더라도 직장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에 한번 더 깊이 생각하고 개전의 정을 기대하며 선의를 베풀었었다.

그런 결과로 그들 중 몇은 새롭게 마음을 변화해서 무사하게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정년퇴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때론 회사의 규정을 조금 어기면서까지 구제해 주었던 것은 무언가를 바라고 도와준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라도 그도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왕이었던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해 보려고 한다.

어떤 대상의 원래 요소가 변화된 이후에도 그 대상은 여전히 동일한 대상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커다란 배에서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내고 새 판자를 그 자리에 교체해 넣었다. 이 배는 이렇게 수리를 거듭하며 거의 모든 부분이 변하였으나 형태는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테세우스의 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이 배가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고 했다고 한다.

사람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고치며 변화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평생 똑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행동도 가치관도 습관도 조금씩 달라지게 되고 그러한 변화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고 그 변화의 추이에 따라 어릴 적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씩 변했지만 인간관계와 가족의 동의는 계속 원래의 그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테세우스의 배보다 더 큰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엊그제 군산에 갔다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여자 후배를 우연히 함께 만나게 되었다. 잘 아는 후배가 누구라고 소개 했지만 나는 전혀 그를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너무 많이 변해서 알 수는 없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그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테세우스의 배처럼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할지라도 그를 인식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철학적인 논리를 펼쳐보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의 변절, 타락, 추락, 불편 등을 이야기할 때 “계가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내가 그에게 어떤 도움을 베풀었는데,”하며 도발적 충동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사람은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니 이런 현상에 대해서 굳이 마음을 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도발적이고 상식 밖의 이기적인 행위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다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오늘 이 후배를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오래된 선배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의 변화를 알 수 없듯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현실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아마도 나도 모르게 많이 변했을 것이다.

행동거지도 달라지고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지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 관점에서 나를 배반하고 변절자가 되어 나를 안타깝게 했던 몇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을 설명할 때 나는 상당히 흥분되고 도발적인 태도를 숨길 수가 없다.

오늘 찾아간 선배의 집에는 몰라보게 변해버린 그 사람의 생활 터전을 대하면서 크나큰 변화를 바라보게 되었다.

잘 정리되지 않은 환경과 혼자 살아가는 삶의 변화된 모습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그 선배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지럽혀져 정리되지 않았어도 분명 이곳은 그 선배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이를 먹고 생물학적인 모습이 달라졌어도 그 사람의 됨됨이나 내면의 축적된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게 된다.

나에게 "내일은 산중마을 <고산>에 있는 바다 고기인 홍어탕을 먹으러 가시죠!" “그곳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랍니다.”하면서 초대해준 후배를 생각하니 더욱 고맙게 생각하게 된다. 그냥 사람을 잘 가리지 않고 사람이 좋다고 신뢰하고 존중하는 후배를 생각하니 “좋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는 논리를 이야기하게 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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