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무관심은 없다

feat. 브레이브걸스 - 운전만해

by 다섯째

'운전만해'와 같이 좋은 노래가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가수에게나 리스너에게나 저주와도 같은 일이다. 명곡이 이렇게 꼭꼭 숨는 이유는 노래에 무슨 결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저 관심을 받지 못했을뿐. 관심을 가지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도 무관심한 데에는 비정하리만치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다. 애초에 이유가 있는 무관심은 있을 수 없다. 관심은 이렇게 어떤 초월적인 간섭이 있는 것마냥 불공평하게 분배된다. 이를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무관심에 가해지는 감정은 악의에 가까울 것이다.


가수에게 있어 무관심은 현실에서의 생존과 존재론적인 사상을 모두 위협하는 심오한 저주다. 마치 졸음과도 같다. 깨고 싶을 때는 무슨 발악을 해도 절대로 안 깨다가 의도치 않은 예상치 않은 타이밍에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아무리 사재기를 한들 그런 인조적인 노력으로는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인기 방송이나 유튜브 알고리즘 같은 운명의 흐름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주어져야 그나마 극복할 수가 있다. 그 희귀한 사례들은 무관심에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해 준다. 인디 음악이 마니악해서 인기가 없는 것이라는 무관심자들의 주장은 장기하, 혁오 등의 메이저화로 논파되었으며, 대형 아이돌의 노래만이 좋은 것이라는 세간의 태도는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을 통해 반성의 계기를 가졌다.


브레이브걸스가 그 동안의 신실한 자세로 임한 위문공연은 구원의 손길을 얻을 마일리지를 쌓을 기도로서 작용했다. 요즘 같이 군인들에게 매정한 시선을 날리기 일쑤였던 흉흉한 시대에, 대신 군인에게 긍정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을 돌리게 해준 시대상의 환풍구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군인과 무명 아이돌에 대한 저주를 단번에 풀어버린 이들의 환기 작용은 고등어 구워 먹는 걸 자제하자는 뜬구름식의 캠페인보다도 공기를 말끔하게 해주었고, 남성들의 부르짖음보다도 효과적이었으며, 이들이 '위문'이라는 단어에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무리들을 헤치고 새 시대의 희망으로까지 급부상하게끔 만들었다.


그들이 푼 저주는 그들 자신에게 걸린 저주만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30살이 되면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지 않게 된다'는 말이 언젠가 듣고서부터 저주처럼 다가왔다. 항상 어른거리던 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튜브 인디밴드 채널에서 새로운 노래를 밥 먹듯이 뒤지던 나의 탐구욕은 30살이 되기도 한참 전에 픽하고 사그러들었다. 막상 새로운 음악 리뷰를 남기고 싶어도 쓸만큼 애정이 쌓인 노래는 죄다 테임 임팔라 것뿐으로 고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주를 푸는 포션의 물방울처럼 이따금씩 나에게 떨어지는 취향저격 노래는 희망을 조금씩 맛보여 준다. 가장 최근에 맛본 포션인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는 전국민적 응원과 시티팝이라는 장르적 취향에 많이 의존하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취향 발굴을 위한 위대한 첫 걸음이다.


시티팝은 MR을 얼마나 충실히 재현했다 해도 현대인의 보컬이 입혀지는 순간 재현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노래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 이유로 시티팝으로서는 멀리 했으나, 듣다 보니 멜로디와 음색 자체가 좋아 지금은 어느 시티팝보다도 즐겨 듣는 노래가 되었다. 시티팝이라는 장르로서의 가치보다는 이 노래가 가진 서사적인 가치가 이 노래를 빛나게 해주었다. 이제는 무슨 짓을 해도 저주를 풀 수 없으리라는 해탈감이 뮤비에 멤버들의 이상을 가득 담도록 만들었고, 그렇게 애절한 마지막 기념비로만 남겨질 뻔한 이 노래는 오히려 그 덕분에 극적인 서사에 있어 강렬한 증거가 되었다. 노래 외적으로 가지는 메타적 가치가 이 노래의 완성도를 더하는 것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도시의 네온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이 노래는 아티스트와 리스너의 저주를 동시에 물리친 간만의 영약과도 같았다. 이번에 목도한 기적을 통해 브레이브걸스 갤러리의 교훈이 다시금 가슴에 박힌다. "지금 내가 무시하고 있는 저 가수들이 미래의 브레이브걸스일 수 있다". 지금 자신의 길을 의심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위해서라도 저 노련한 아재들의 격언을 가슴에 새기며 무심코 시선을 주위로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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