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 폐기란 없다
오랜만에 은퇴를 하신 교장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은퇴 직전 당신의 용도 폐기를 걱정하셨던 교장선생님은 현재 다음의 세가지를 실천 중이라고 하셨다.
1. 혼자를 즐기기
2. 혼자를 버텨내기
3. 낮아지는 연습하기
이른 승진에 교장으로 은퇴하였지만 아직 정년 연한이 남아서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평교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셨다. 학생들과 부모님들, 동료교사들에게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하셨다.
정년 이후의 계획은 정년 제한이 없는 복지 관련 종사자 직업을 준비하고 계셨다.
다행이었다.
일을 워낙 열정적으로 하시던 분이라 은퇴하시면 일이 없어 병나실까 걱정했던 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당신이 교감, 교장의 관리자를 오래해서 묵은 습관이 있을까봐 도움 받지 않고 업무를 즐기며 혼자서 해내는 연습, 대접 받던 것을 내려놓고 낮아지는 연습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은퇴 후 앞으로 담당하게 될 직군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낮아지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하신다.
도대체 이런 혜안과 자신감, 열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가장 단순하고 복잡한게 우주라고 했는데
그 복잡한 삶을 사시다가 이렇게 선뜻 변화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유연성일까. 꾸준함일까. 거칠게 없는 단순함일까. 낭만적인 용기일까.
한때 학교재단이 어려움이 처했었지만 교장공모제로 학교를 멋지게 기사회생시킨 업적이 있으신 분이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일만 하듯 토생에 맞게 적응하시는 절제된 일상, 정제된 삶은 가히 모범으로 보인다.
사람은 자기가 인생을 이해한 대로 살아간다.
오해로 금도를 넘을 수도 있고,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 수 있다.
어떤 삶을 살던 본인이 선택한 삶이다. 그래서 인생의 정답이란 없다.
그냥 그랬었으면하는 회한만 남을 뿐이다.
행복해도 회한은 있기 마련이다.
은퇴를 앞두고 또는 업무에서 이미 용도 폐기되었다.
앞으로 용도 폐기 될 것이라는 감정어린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표정 관리, 업무를 연결짓는 능력, 견디는 힘,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해 보인다.
밥이 식으니 따뜻할 때 먹으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씀은
물체의 온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밥 안에 담긴 엄청난 온기를 전하는 말씀이다.
낮아지는 연습 중이라는 말씀은 예전의 영광을 뒤로 한채 낮은 직책으로의 전이 준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에서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다짐이자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기 위한 추스림의 조합이다.
그래서 이 어른이 참으로 존경스럽다.